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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dhenge, England Woodhenge is a Neolithic Class II henge and timber circle monument within the Stonehenge World Heritage Site in Wiltshire, England. It is 2 miles (3.2 km) north-east of Stonehenge, just north of the town of Amesbury. From Woodhenge ) 2018. 10. 1.
Rawak Stupa on Silkroad Rawak is a Buddhist stupa located on the southern rim of the Taklamakan Desert in China, along the famous trade route known as the Silk Road in the first millennium Kingdom of Khotan. Around the stupa there are other smaller structures which were originally decorated with a large number of colossal statues. The courtyard of the temple was surrounded by a wall, which contained terracotta relieves.. 2018. 9. 30.
셀카는 중독이며 정신병리인가? 근자 국내에 이상한 번역본 하나가 나왔으니, 도서출판 지식의날개가 선영아 번역으로 선보인 이 책은 제목이 《나는 셀피한다 고로 존재한다》이며, 저자는 엘자 고다르라 한다. 이 신간을 우리 공장 출판 담당 이웅 차장이 그저께 '우린 왜 스마트폰 속 내 사진에 집착할까'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다. 관심 있는 이는 저 파란 제목 클릭하면 원문 보기 들어간다. 나는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은 상태라, 이에 대한 간평은 순전히 이웅 차장 소개 기사에 근거함을 미리 밝혀둔다. 이 신간 기사 첫 줄은 "소셜미디어(SNS)에 자신을 노출하기 즐기는 사람일수록 성관계를 맺는 횟수는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가상 세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실제 삶에서 느끼는 기쁨은 그만큼 줄어든다는 의미다"라는 것이니, 이게 무슨 소.. 2018. 9. 30.
현대 베트남의 국부 호치민과 한국독립운동 이 사진에 대한 김용래 기자 설명문은 다음과 같다. "호찌민, 한국인들의 저항 그대로 따라"…100년 전 프랑스 경찰 문건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1920년 전후로 프랑스에서 한국의 독립운동가들과 당시 베트남의 독립지사 호찌민(전 베트남 국가주석)이 밀접하게 교류한 내용이 프랑스 정부 자료로 최초로 확인됐다. 재불 독립운동사학자 이장규 씨는 프랑스 국립해외영토자료관(ANOM·엑상프로방스 소재)을 뒤져 1919~20년 프랑스 파리의 정보경찰관이 작성한 동향보고 문건을 발견해 연합뉴스에 공개했다. 사진의 문서는 프랑스의 정보경찰관 '장'이 작성한 것으로 "응우옌 아이 꾸옥(호찌민의 당시 이름)은 한국인들이 하는 모든 일을 자신의 근거로 삼고 있다. 그는 (일제에) 저항하는 한국인의 계획을 거의 .. 2018. 9. 30.
풍년 들어봤자 절반은 빚잔치 절반은 세경 한시, 계절의 노래(187) 농부의 노래 다섯 수(田父吟五首) 중 셋째 [宋] 섭인(葉茵) / 김영문 選譯評 하늘이시여 농부들을생각해주소서 만 이랑 황금 물결온 땅을 덮었지만 곡식 있어도 자녀 위해계획 마련 못하고 절반은 빚 갚고절반은 세금 냅니다 老天應是念農夫, 萬頃黃雲著地鋪. 有穀未爲兒女計, 半償私債半官租. 70~80년대 대학가에서 우골탑(牛骨塔)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대학을 흔히 상아탑(象牙塔)이라 부르는 세태에 대한 풍자였다. 당시 시골 출신으로 대학에 다닌 사람들 대부분은 고향집 암소가 학비의 원천이었다. 암소는 지금의 경운기나 트랙터를 대신하는 우수한 농기계였을 뿐 아니라 1년에 한 번씩 송아지를 낳아 몫돈을 마련해주는 부동의 재테크 원천이었다. 암소가 마련해준 몫돈으로 대학을 다녔으니.. 2018. 9. 29.
풍납토성, 무령왕릉, 그리고 권오영 여러 번 이곳저곳에서 말했듯이, 나한테 《직설 무령왕릉》은 해직이 준 선물이었다. 나는 2015년 11월28일, 연합뉴스에서 해직되었거니와, 졸저는 이듬해 4월 30일자로 찍혀 도서출판 메디치미디어에서 나왔다. 해직을 축복으로 여긴 나는 이때다 싶어, 기간 미룬 일이나 이참에 마침표를 찍자 해서, 나아가 뭐 이래저래 소일거리 삼아 옛날 원고를 뒤척이며, 이 참에 그 옛날에 사산死産한 무령왕릉 원고 정리에 들어가기로 했으니, 그리하여 마침내 저 졸저가 나왔다. 남들 생각보다 일이 훨씬 빨리 진행된 까닭은 실은 그 원고가 2001년에 이미 완성을 본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15년이 흘러버렸으니, 손볼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거니와, 무엇보다 그 사이에 무령왕릉을 둘러싼 무수한 변동이 있었다. 지금.. 2018.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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