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5711 조선 중기 탐라의 선비 김진용金晉鎔 제주시에서 성산 쪽으로 가려면 흔히 시원하게 뚫린 번영로를 타게 된다. 그 길을 타고 쭉 가다보면 나오는 동네가 봉개동이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구불구불 올라가노라면 '明道岩마을'이란 빗돌을 만나고, 다시 거기서 오른쪽 샛길로 접어들어 약간 올라가면 제법 넓은 터전 위에 높직한 축대, 그 위에 비석 하나가 얹힌 광경을 만난다. 사실 이 터는 안세미오름이란 오름의 분화구다. 제주가 한창 들끓던 시절 여기서도 화산폭발이 있었던 건데, 그 시간이 지난 뒤 사람들이 모여살게 된 것이다. 왜 여기 이렇게 높직한 축대를 쌓았느냐하면, 옛날 여기 살았던 한 선비를 기리려함이다. 그 선비는 김진용金晉鎔이다. 조선 중기를 산 그는 진사시에 급제해 상경한 뒤 참봉 벼슬을 받았다. 하지만 사양하고 낙향한 뒤 후.. 2023. 1. 30. 음력설 영어 번역을 둘러싼 한중 name nationalism, 다음 타겟은 동식물이다 음력설? 중국설?…"中 민족주의 고조에 동아시아 설 논쟁 가열" 권수현 / 2023-01-29 17:10:04 CNN "아시아 국가 간 문화적 정체성 갈등·지정학적 긴장도 원인" 음력설? 중국설?…"中 민족주의 고조에 동아시아 설 논쟁 가열"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동아시아 최대 명절인 설의 영어 표현이 ′음력 설′(Lunar New Year)′이냐 ′중국 설′(Chinese New Year)′이냐를 두고 논쟁이 확대된 배경에는 중국의 민족주의 고조와 k-odyssey.com 태음력을 아예 말종하고 태양력으로 통일한다면야 이런 일이 생길 여지가 있겠는가마는, 문화가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아니해서 이웃 일본만 해도 메이지유신 이래 강력한 서구화 정책에 힘입어 음력설이 아예 씨가 말라 이른바 신정으.. 2023. 1. 30. 조선왕조 실록을 두번 목판에 새긴 고려왕조 고려시대의 대장경을 추정하건데: 팔만대장경의 글자수와 조선왕조실록의 글자수가 5200만자 정도로 거의 비슷하다. 팔만대장경은 쉽게 말해서 조선왕조실록 전체를 목판에 새겼다고 보면 되겠다. 이게 얼마나 많은 글자수냐 하면 중국의 사기부터 명사까지 24사를 모두 합한 글자수가 5000만자가 안 된다. 그런데 팔만대장경이 끝이 아니고 그 앞에 초조대장경이 또 있다. 고려시대에는 조선왕조 전체를 두 번 목판에 새기거나 중국 24사를 두 번 목판에 새겼다고 보면 되겠다. 이쯤되면 초조대장경-팔만대장경이 얼마나 거대한 문화적 성취물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고려시대 초기까지 축적한 한반도의 문화적 역량의 수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하고자 할 때, 앞에서도 여러번 .. 2023. 1. 29. 논문도 현장성이 있어야 한다 내가 기자라서, 그래서 현장성을 강조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나는 논문 역시 현장성을 떠날 수는 없다고 말한다.현장성 없는 논문이 무슨 생명이 있다는 말인가?한데 국내 소위 학술계 글쓰기 풍토를 보노라면, 이런 현장성을 가미한 구절이 들어가기만 하면, "이게 논문이냐 신문기사지"라는 비아냥이 판을 친다. 이런 글쓰기가 어딨단 말인가?그 어떤 논문을 봐도 현장성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어, 무미건조하기가 현미밥 그대로 씹는 것만 같다. 이런 건 글도 아니다. 논문이라고 별천지가 아니다. 어찌 현장을 빼고 글을 쓴단 말인가?논문 쓴다고, 그거 준비한다고 현장 방문하는 일 너무 자주 본다.하지만 막상 그 글에는 그런 현장성이 도무지 드러나지 않아, 직접 보고 쓴 글인지? 혹은 도판 보고 지껄인 헛소린지가 드러.. 2023. 1. 29. 일본 육국사의 시대 일본의 소위 육국사에 대해 더 써본다. 육국사의첫머리인 일본서기는 이미 많이 소개되어 생략한다. 육국사의 두번째인 속일본기에 기재된 천황들이다. 다음은 일본후기이다. 환무천황이 겹쳐 있는데 환무천황 치세의 791년까지는 속일본기, 그 이후는 일본후기에 기록된다. 그 다음은 속일본후기. 인명천황 단대의 실록이다. 다음은 일본문덕천황실록. 역시 문덕천황 단대의 실록이다. 마지막으로 일본삼대실록이다. 육국사라고 하지만 가장 먼저 나온 일본서기가 지통천황때까지의 편년 통사의 모습인데 반해, 마지막 3개 사는 전형적인 실록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속일본기와 일본후기의 경우도 아마 당대 천황이 승하하면 바로 뒤이어 실록을 편찬하고 싶었겠지만, 그렇지 못해 여러대의 실록을 묶어 편찬한것으로 사실 육국사에서 제이리 앞.. 2023. 1. 29. 할아버지의 장인어른의 장인어른도 할아버지 '나' 자신이 아버지 쪽뿐만 아니라, 어머니 쪽 가계와도 친족으로써 의식하고 있었으며 양쪽의 후손임을 자임했다는 이른바 '양측적 친속관계'는 고려시대의 사회풍속을 설명하는 중요한 논리이다. 실제 이는 많은 면에서 고려사회의 움직임을 설명해준다. 그런데 과연 고려만 그랬을까. 조선 초기의 그 유명한 안동권씨 가 서거정(1420-1488) 같은 외손이 주도해 만들어졌고, 수록 인물 대부분이 권씨가 아니라는 점은 일단 젖혀두자. 고려 유풍이 남아있는 시절이니까. 훨씬 후대로 내려와보자. 황현(1855~1910)의 에 따르면, 명성황후 민씨(1851~1895)는 영남 남인의 큰 어른이었던 우복 정경세(1563~1633)를 일러 "우복 할아버지"라 하였다 한다. 왜? 우복의 사위가 서인 노론의 정신적 지주 동춘당.. 2023. 1. 29. 이전 1 ··· 2562 2563 2564 2565 2566 2567 2568 ··· 428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