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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옷 입은 선녀가 새로 걸친 옷 납매 한시, 계절의 노래(235) 납매(臘梅) [宋] 정강중(鄭剛中) / 김영문 選譯評 흰옷 입던 선녀가새 옷으로 바꾼 듯 봄에 앞서 은은하게노란색으로 물들였네 교교한 섣달 눈과다투려 하지 않고 고독한 어여쁨을그윽한 향에 덧붙일 뿐 縞衣仙子變新裝, 淺染春前一樣黃. 不肯皎然爭臘雪, 只將孤艶付幽香. 섣달에 피는 매화라 납매(臘梅)라는 이름이 붙었다. 중국 원산이라 당매(唐梅)라고도 부른다. 납(臘)은 납월(臘月) 즉 음력 12월이다. 그러나 개화 시기는 좀 길어서 대개 동짓달에서 정월까지 꽃을 피운다. 색깔은 노란색이며 향기가 진하다. 남쪽에는 납매가 피었거나 곧 필 것이다. 겨울에 피는 꽃이라 매화라는 이름이 붙었으나 소속은 매화와 다르다. 즉 매화는 장미과지만 납매는 납매과에 속한다. 중국에 있을 때 겨울에 .. 2019. 1. 6.
정민하(鄭敏河, 1671~1754)〈식영정기(息影亭記)〉 번역 및 해제 : 기호철 ( 독학하는 장성 독거노인 ) 해제 : 담양 식영정기는 그간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이 쓴 기문만 언급되는 일이 많다. 임억령이 사위인 김성원(金成遠)의 정자를 빌려 몇 년 사용하다 고향 해남으로 돌아가 쓴 〈식영정기(息影亭記)〉는 그 나름으로 식영정 역사를 논할 때 매우 중요한 자료임에 틀림없지만, 실은 그것이 말하는 식영정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식영정과는 무관하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로 풍모가 크게 변했다. 임억령 시대 식영정은 이후 언제인지 사라지고 200년 가까이 그곳은 빈터로 남았다가,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4)의 후손들이 식영정 터를 매입해 정자를 새로이 짓고 중건했으니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식영정과 직접 연결된다. 식영정 중건기를 송강.. 2019. 1. 5.
조선 숙종 임금이 읊은 북한산성시 6수 번역 : 기호철 ( 장성 독거노인) 임진년(1712, 숙종 38) 4월 10일에 숙종(肅宗)이 북한산성(北漢山城)에 행행(幸行)하여 성첩(城堞)을 두루 관람하고 천혜의 험준함에 감탄하며 시 6수를 지었다. 1. 전쟁에 대비해 마련한 새 산성에 행행하려새벽에 나선 남문엔 북과 나팔 울려퍼지네용맹한 기병 수천명 대오 나누어 호가하니훈훈한 바람에 해는 길어져 여름이 되었네 計深陰雨幸新城曉出南門鼓角嗚驍騎數千分扈蹕風熏日永屬朱明 2. 서문 초입에서 한번 고개 돌려 돌아보니기운솟고 뜻 웅장해져 내 근심 사라지네도성 지척에 금성탕지 같은 성 굳건한데어찌 우리 백성 지키는 서울을 버리겠소 西門初入一回頭氣壯心䧺寫我憂國都咫尺金湯固何棄吾民守漢州 3. 어렵사리 십리 가서 행궁 이르니 우뚝한 시단봉 바로 아래 동쪽이라 노적봉 꼭.. 2019. 1. 5.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한때 그런 시절이 있었다. 누구나 읽는 듯 하기에 나 역시 그 대열에서 이탈해 낙오하는 듯 하고, 그래서 나 역시 무턱대고 읽어야겠단 윽박 하나로 꾸역꾸역 손을 대고선 기어이 독파는 했지만, 그때나, 또, 30여 년이 지난 지금이나 그에서 격발한 단 한 구절도 남지 않은 그런 책이 있다. 광대 공연 뒷줄에 섰다가 그 광대 무슨 공연하는 줄로 모른 채, 앞줄에 늘어서 가린 군중이 왁자지껄 박수치니깐 나도 따라 무턱대고 박수치며 장단 맞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나는 광대였다. 우리 시대엔 그냥 아미자라 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찾는 이 있을까? 아무도 찾지 않는 책이 되어 소리소문없이, 나는 간단 말도 없이 그리 퇴장하고 말았다. 고골리의 시대가 있었다. 그땐 그랬다. 고골리를 알아야 하.. 2019. 1. 5.
우레 치니 침묵하는 말떼를 격분하며 한시, 계절의 노래(234) 기해잡시(己亥雜詩) 220 [淸] 공자진(龔自珍) / 김영문 選譯評 온 세상의 생기는폭풍 우레에 기대는데 말떼는 모두 침묵서글픈 세상일세 하느님께 권하노니다시 힘을 떨치시어 한 격식만 구애 말고두루 인재 내리소서 九州生氣恃風雷, 萬馬齊喑究可哀. 我勸天公重抖擻, 不拘一格降人才. 중국에서 근대를 거론할 때는 반드시 공자진에게서 시작한다. 그런데 공자진은 중국 근대의 시작이라고 하는 아편전쟁(1840) 한 해 뒤(1841)에 죽었다. 이렇게 보면 공자진은 최후의 고대인이면서 최초의 근대인에 해당하는 셈이다. 그는 유명한 문자학자 단옥재(段玉裁)의 외손자로, 청나라 말기에 유행한 공양학(公羊學)의 입장에 서서 중국 자체의 변화를 통한 새로운 사회를 열망했다. 우리나라의 성호 이익이나.. 2019. 1. 5.
부여 부소산성 출토 금동광배(扶餘扶蘇山城出土金銅光背)에 대한 나의 중간 결론 1. 扶餘 扶蘇山城 東門址 出土 金銅光背 뒷면 銘文은 ‘何多宜藏治佛’이며, 그 意味는 “하다의장(何多宜藏)이라는 사람이 佛像을 造成했다”는 뜻이다. 이를 從來에는 ‘何多宜藏法師’라고 읽은 것은 明白한 誤讀이다. 2. 이 金銅光背를 裝着한 佛像을 만든 ‘何多宜藏’은 6~7世紀, 主로 佛像을 만드는 일에 專門的으로 從事한 匠人 姓과 이름이다. ‘何多’가 姓氏다. 3. 이는 古代 日本에 登場하는 韓半島 渡來系 有力 家門 중 하나인 ‘하타씨[秦氏]’의 由來, 或은 性格을 가늠하는데 매우 重大할 수 있다. 4. 古代 日本 姓氏 ‘秦’는 百濟에서 渡來한 家門이다. 5. 秦氏는 日本書紀와 新撰姓氏錄 等의 古代 日本 文獻을 보면, 韓半島系 渡來人 중 弓月君을 始祖로 삼거니와, ‘弓月’에 대한 古代 韓國語 옮김이 바로 .. 2019.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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