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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천문학적 정렬: 초기 고대 문명 유적에서 별자리를 읽고 지도화하기 메소포타미아 쐐기 문자 점토판과 이집트 상형 문자에는 태양, 별, 행성 위치가 언급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또한 세계 여러 지역 고대 건축물은 동서남북 네 방향이나 천체를 향해 정렬되어 있거나 직접적으로 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천문학 역사가인 마이클 호킨Michael Horkin은 최근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북아프리카에서 발견된 2,000개 신석기 시대 무덤을 목록화하고 1,000개 이상 다른 무덤을 조사했다.영국 왕립 천문학회Royal Astronomical Society에서 발표된 그의 논문은 기원전 1000년 이전에 세운 수천 개 신석기 시대 건축물이 태양이나 주요 별자리를 향하도록 지었음을 지적한다. 이번 연구에 대해 로스앤젤레스 그리피스 천문대Griffith Observatory 고고천문.. 2025. 12. 22.
"조선시대 사람이 아니라서 다행" 구한말 검안 자료에 담긴 불쌍한 인생들 구한말 검안 자료에는 대개 살인사건 관련인지라 요즘으로 치자면 강력사건이다. 그리고 남아 있는 자료는 수도권 자료는 별로 없고 전부 지방 깡촌 향촌사회 이야기다. 그 동네에도 양반이 있고 평민이 있고 그렇다. 노비는 이미 구한말 검안 자료에 많이 나오지 않는다. 대개의 경우 평민들끼리 치고 받거나 아니면 평민과 양반이 치고 받거나 하며종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나오긴 하는데 우리 생각만큼 비굴하기만 한 인생들은 아니다. 이 향촌사회의 콩알 만한 자존심우리는 양반 자손이라고 해 봐야그 양반 자손이나 평민이나 먹고 사는걸 보면 별 차이도 없어 보인다. 가끔 그 향촌사회 누대 양반집도 강력사건에 휘말린 경우도 나오는데 그래봐야 시골양반이라 경화사족의 힘이나 권위에 비하면 택도 없는 인생들이다. 이런 불쌍한 인.. 2025. 12. 22.
강릉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이른바 적석분구묘 오늘 2025년 12월 22일, 강원도 강릉시가 아래와 같은 보도자료를 배포했거니와, 이번 발굴이 지닌 가장 큰 의미는 강릉 지역이 신라문화권에 본격 편입하기 직전, 그 문화 양상 일단을 보여주는 증좌라는 데 있다 하겠다.이르기를 이번 소위 '적석분구묘'를 만든 시점을 조사단은 기원후 3세기 후반 내지 4세기 초반 무렵으로 보거니와, 이 시점을 지나면 강릉 지역은 신라에 직접 편입된 징후를 뚜렷이 보인다. 나아가 이런 적석분구묘가 한반도 중부 일대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呂‧凸자형 집터를 만든 사람들과 관련이 있고, 더구나 그것이 확인하는 지역이 태백산맥 넘어 영동 지역이라는 점에서 이번 발굴은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본다.이런 고고학적 유산이 조사단은 "영동 예맥역사문화권과 단결-끄로우노프카문화(옥.. 2025. 12. 22.
2천 년 된 어린아이 가죽 신발, 오스트리아 광산서 출토 (1 September 2023) 오스트리아 역사마을 할라인Hallein 인근 뒤른베르크Dürrnberg에서 진행된 발굴 작업 중, 놀라울 정도로 잘 보존된 철기 시대 어린아이 신발 한 짝이 발견되었다. 2001년부터 독일 보훔 광업 박물관German Mining Museum Bochum, 라이프니츠 지하자원 연구 박물관Leibniz Research Museum for Georesources은 할라인 인근 뒤른베르크에 광산 고고학 연구 구역을 마련해 광업 고고학 조사를 진행했다.잘츠부르크 인근 뒤른베르크는 철기 시대부터 암염 채굴rock salt mining이 이루어진 곳으로 유명하다. 소금의 보존 효과 덕분에, 다른 발굴 지역에서는 드물게 발견되는 유기물 유물이 특히 잘 보존되어 있다.올해 게오르겐베르.. 2025. 12. 22.
족보가 그리는 구한말, 그리고 검안서류 필자의 족보 및 호적 서류 섭렵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검안서류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함인데, 족보가 그리는 당시의 세계관과 실제 검안서류나 역사기록이 보여주는 모습은 상당한 거리가 있다. 구한말의 검안서류에 나오는 조선사회의 모습은 매우 미묘하다. 노비가 어디를 보나 바글바글 한 사회는 더 이상 아니다. 노비 사역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불과 백여 년이 넘는 짧은 기간 동안에 조선사회가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는 뜻이다. 19세기는 그렇게 우리 역사에 엄청난 시대였다. 단순히 삼정문란으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그런 시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이해에 있어 족보는 호적이나 역사 기록 만큼이나 중요한 정보를 때로는 전해 주지만, 족보만으론 전혀 두 발로 설 수 없다는 데 이 사료의 문제점이 있다 하겠다. 따라.. 2025. 12. 22.
사료로서의 족보 필자의 작업, 조선시대 19세기 말 검안 서류에는 단지 그 당시 검시 자료만 달랑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는 관련자들의 취조 증언이 들어 있어당시의 사회상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이 자료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검시자료였지만, 이 검시자료를 이해하려면 당시 정황을 알아야 하니 이것저것 공부하면서 여기에 이르렀다. 족보는 사실 필자는 보학자도 아니고, 보학 자체에는 별 관심 없다. 그리고 필자는 경험상 족보의 내용, 집안 전승의 내용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사람의 기억이란 묘하게 유리한 쪽으로 비트는 습성이 있어서 의도적이건 아니건 간에 족보는 그 족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희망을 반영한다. 단순히 우리 족보는 가짜가 아니다, 라는 것으로 이야기 할 만한 것이 아니다... 2025.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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