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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Who in Ancient Korea

부여례(扶餘禮)

by taeshik.kim 2018.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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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백제인. 개로왕 18년(472)에 위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돼 개로왕의 표를 받쳤다. 이 때 관작은 관군장군(冠軍將軍) 부마도위(駙馬都尉) 불사후(弗斯侯) 장사(長史)였다. 여(餘)라는 성씨로 보아 백제왕실 일족일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 권 제25(백제본기 제3) 개로왕본기 : 18년(472)에 사신을 위(魏)에 보내 조공하고 다음과 같은 표(表)를 올렸다. 『신은 나라가 동쪽 끝에 서 있고 승냥이와 이리[豺狼:고구려]가 길을 막아, 비록 대대로 신령한 교화를 받았으나 번병(蕃屛)의 [예를] 바칠 수 없었습니다. 멀리 천자의 대궐[雲闕]을 바라보면 달리는 정이 끝이 없습니다. 서늘한 바람이 가볍게 부는 이 때에 생각컨대 황제 폐하는 천명[天休]에 화합하시니 우러러 사모하는 정을 이길 수 없습니다. 삼가 사사로이 임명한 관군장군(冠軍將軍) 부마도위(駙馬都尉) 불사후(弗斯侯) 장사(長史) 여례(餘禮)와 용양장군(龍將軍) 대방태수(帶方太守) 사마(司馬) 장무(張茂) 등을 보내 험한 파도에 배를 띄워 아득한 나루터를 찾아 헤매며 목숨을 자연의 운수에 맡겨 만 분의 일의 정성이라도 드리고자 합니다. ...중략... 현조(顯祖)는 [백제가] 궁벽하고 먼 곳에서 험난을 무릅쓰고 조공하였으므로 예우를 더욱 후하게 하고, 사자 소안(邵安)을 보내 백제의 사신과 함께 돌아가게 하면서 조서(詔書)를 내려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표(表)를 받고 별탈 없음을 들으니 매우 기쁘도다. 경(卿)이 동쪽 한 구석 먼 곳[五服] 밖에 처해 있으면서도 산과 바다 길을 멀다 하지 않고 위(魏)나라의 궁궐에 정성을 바치니 지극한 뜻을 흔쾌히 가상하게 여겨 가슴에 거두어 두었도다. 짐은 만세의 위업을 이어 받아 천하[四海]에 군림하고 모든 백성들을 다스리니, 지금 세상[宇內]이 깨끗이 하나로 되고 팔방 끝[八表]에서까지 의(義)에 귀순하여 업고[襁負] 오는 자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으며, 풍속이 평화롭고 군사와 군마가 강성함은 모두 여례(餘禮) 등이 직접 듣고 본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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