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발굴조사한 후포매리 고분군은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후포매리 산 32번지 일원에 위치한다. 북서쪽으로는 신라산성으로 알려진 후포매리산성이 있다. 문화재 지정이 되지 않아 무덤 대부분이 도굴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곳은 신라의 북방 진출과 관련한 교두보 같은 중요성을 지닌다고 판단된다.
강원고고문화연구원에서는 이러한 후포매리 고분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2020년 (사)한국문화유산협회가 공고한 매장문화재 학술발굴조사 활성화 사업(한문협 2020-0016, 2020.1.10.)에 수행기관으로 선정되었다.(한문협 2020-0145, 2020.3.26.).
이를 발판으로 매장문화재 발굴허가를 득하고(허가 제2020-0672호, 2020.5.13.), 이후 (사)한국문화유산협회와 계약을 체결하고(2020년 5월 19일)하고 2020년 5월 25일 발굴조사에 착수해 동년 7월 6일 현재까지 조사 중에 있다.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봉분은 지름 10m가량으로 추정되며, 가장 지대가 낮은 북사면에서 정상부까지 잔존하는 높이는 1.3m가량이다. 봉분은 원형이며, 봉분을 구획하기 위한 별도의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고분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낮아지는 경사지대에 조성되었고, 봉토는 구지표에서부터 석실을 감싸는 형태다. 구지표 위로부터 갈색 사질점토-황갈색 사질점토를 덧붙여 석실을 지탱하기 위한 구축토를 쌓고 그 위로 갈색 사질점토를 두껍게 쌓아 석실을 감싼 뒤 마지막으로 황갈색을 띠는 사질점토를 덮어 마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석실은 봉분 중앙에서 남편으로 약간 치우친 지점에 위치하며, 주축 방향은 남-북에 가깝다. 규모는 전체 길이 4.9m, 너비 3m가량이며, 개석을 포함한 높이는 1.8m 가량이다.
석실은 지형이 상대적으로 높은 서쪽에서 동쪽 방향으로 ‘L’자 모양에 가깝게 묘광墓壙을 파낸 뒤 벽석을 쌓아 올리고 뒤채움을 했다. 묘광은 너비 3.6m 가량이다. 평면 형태는 내부를 기준으로 장방형을 띠며, 장폭비는 1:1.75가량이다.
석실 내부는 길이 3.53m, 너비 2.05m이며, 최대 높이는 1.52m이다. 석실 벽은 북단벽과 양장벽, 남단벽 일부를 동시에 조성 한 뒤 남단벽 오른편에 치우쳐 추가장을 위한 출입문을 만들었다. 벽석은 깨서 다음은 돌을 9~10단가량 가로눕혀
쌓기 또는 세로눕혀쌓기를 했다. 벽면 아래쪽을 채운 돌들은 길이 75㎝ 폭 30㎝이고, 중앙에는 35×15㎝, 최상단은 35×13㎝가량의 판석을 사용했다.
석실 북단벽을 통해 살펴볼 때, 상단부에 이르러 너비가 하단부 2m에서 상단부 95㎝로 점차 줄어들어 벽체 평면은
마름모꼴을 띤다.
덮개돌은 석실 상부 3매, 입구 쪽에 1매로 총 4매를 썼다. 남쪽 입구 개석은 석실 바닥면에서 확인됐다. 개석 규모는 1.8×1.2×0.3m 안팎이며, 입구부를 덮은 개석은 1.3×0.7×0.2m가량이다.
석실로 통하는 출입문은 남쪽 벽 동쪽에 치우쳐 확인된다. 너비 96㎝, 높이 85㎝가량. 입구는 14~24㎝가량되는 자연돌을 질서 없이 밖에서 채워쌓아 막음했다.
석실 바닥은 풍화암반층까지 굴착했다.
관을 놓는 시설인 시상대는 석실 중앙부에 한 곳만 석실 주축방향과 직교하는 동-서 방향으로 확인된다. 길이 2.05m, 너비 1.15m가량의 범위에 걸쳐 판석을 이용해 마련했다.
출토유물 배치상태로 볼 때, 최초 매장 이후 1차례 이상 또 다른 매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별도 시상대는 확인되지 않는다.
도굴 피해가 극심한 가운데 석실 바닥의 중앙과 남동편에 치우친 지점에서 더러 적지 않은 유물이 확인된다. 토기류로는 고배, 뚜껑, 대부완, 소형의 컵형토기와 대각편 등이 있고, 금속류는 금동제 이식, 철도, 등자, 재갈, 교구, 꺽쇠, 철도자 등이 있다.
고배류는 이단투창고배와 단각고배가 모두 출토된다. 이단투창고배는 대각이 비교적 짧고 좁으며, 배신이 낮아진 형태이다. 뚜껑은 단추형 꼭지인 것이 대부분으로, 높이가 비교적 낮고, 卜자형 드림부를 지닌다.
단각고배와 이단투창고배는 출토 위치가 각각 석실 서장벽 중앙부와 남단벽 양쪽 모서리로 다르다. 이는 추가장 흔적으로 보이며, 시기적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판단한다.
금속류는 장신구류인 금동제 이식과 철도와 철도자 등의 무기류, 등자, 재갈, 교구 등의 마구류가 함께 출토되었다. 이식은 수하식 없이 주환만 2점 확인되었고, 철도자는 총 4점 확인됐다. 재갈과 등자 등의 마구류는 강릉 초당동과 병산동 일대의 고분유적에서 소량 확인된 바 있으며, 후포매리 고분 피장자의 신분을 추정케 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조사성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번 발굴조사는 양양 현남면 후포매리 산 32번지의 후포매리 고분군(150㎡)에 대한 첫 발굴조사로, 그 결과 봉토를 갖춘 횡구식 석실묘 1기를 확인하였다.
봉토 지름은 10m내외의 중소형이며, 높이는 구지표로부터 1.3m가량 잔존하여 석실을 양파형으로 감싸고 있다. 석실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낮아지는 구릉 능선을 굴착하여 반지상식으로 조성하였고, 주축방향은 등고선과 직교하는 남-북방향이다. 추가장을 염두에 둔 횡구식으로 입구부는 남단벽의 오른쪽에 치우쳐 위치한다.
도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되나 함몰된 개석으로 인하여 출토유물은 비교적 양호하게 남았으며, 단각고배와 이단투창고배, 대부완, 뚜껑, 소형 컵형토기 등의 토기류와 금동제이식, 철도(鐵刀), 철도자, 등자, 재갈, 교구 등의 금속류가 위치를 달리하여 확인되어 추가장의 시기폭을 가늠할 수 있는 자료가 제공되었다.
현재까지 영동지역에서 횡구식 석실묘가 확인된 유적은 강릉 방내리, 동해 구호동·추암동·망상동·부곡동·괴란동·지흥동, 삼척 갈야산·원당동·궁촌리, 양양 원포리 유적 등이 있다.
고구려계로 알려진 양양 포월리 석실묘를 제외하면 영동지역 해안가를 따라 분포하는 고분군 중 가장 북단에 양양 후포매리 산성과 함께 분포하는 후포매리고분이 확인되었으므로 신라의 북방 진출과 고구려와의 국경에 대한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 related article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