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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김창일을 키운 건 팔할이 조명치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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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명치 특별전이 한국문화사에서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를 나는 생선 비린내를 과감히 박물관, 것도 국가가 경복궁에 운영하는 국립박물관에 도입한 일을 꼽았거니와

조기 명태 멸치를 앞세운 이 전시 기획은 그만큼 문화계를 넘어 한국사회 일각에 잔잔한 파고를 냈다.

이 전시 개막일 그 담당 학예연구사는 갯벌 어부들이 작업용으로 걸치는 갓빠 비슷한 복장을 하고 나와 외빈들을 안내했거니와

이에 재미를 붙여 관련 언론인터뷰나 중요 안내 때마다 이 복장을 하고 나타났으니

이는 곧 전시 또한 연출의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이 사건이 문화계로 국한해 어떠한 영향력을 미쳤는가 하면 직후 다른 박물관 전시기획자들한테 나는 무슨 옷을 걸치지 라는 고민을 안겨주었다는 사실 하나에서도 확인한다.

김창일.

독특한 친구다.

내가 그런 말을 쓴 적한데 팔뚝이 마동석인 마당쇠다.

이 마당쇠 특징이 노출증후군인데 팔뚝 자랑하려면 웃통을 벗어제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틈만 나면 훌렁훌렁 벗은 사진, 혹은 팔뚝이 드러나는 사진을 탑재한다.

본인 노력이야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이 자리서, 그리고 본인한테도 시종일관 당부하고 싶은 것은 그런 인문학스타로 만들기까지 무수하면서도 손에 보이지 않는 도움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난 본인한테 이걸 잊지 말아야 한다고 꼰대 같은 소리를 했다.

그 사람들이 무얼 바라고 그리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릫게 묵묵히 도운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지금의 성공가도는 필연으로 질시 시샘을 부르기 마련이라 특히 적은 내부에서 조용히 자라는 법이며

그렇게 커버린 이가 제어 불가능하다 할 때 그 숨은 마각이 우후죽순마냥 출현해서 찌르기 마련이다.

좋은 이야기만 해야 할 이런 자리에 굳이 햄릿이나 리어를 연상케 하는 불안의 복선을 깔아야 하는 내가 이러는 이유를 짐작 혹은 조금은 동의해줬으면 한다.




이제 해양민속은 김창일 시대다.

그만큼 본인 노력이 없이 뭐가 되겠는가?

다만 구체로 좁히면 결정타는 조명치였으니 그 팔할이 조명치 맞다.

물론 잘난 본인이야 그 전에도 이미 유명했다 설레발할지 모르지만 조명치가 분출구였다는 사실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변치 않는다.

그런 그가 시종해서 기억해야 할 것은 그것을 가능케 하고 밀어준 사람이 불특정 다수로 포진한다는 사실이다.

그가 수행한 거의 모든 일은 세금이 바탕이다. 이는 김창일을 만든 절대의 독재자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뜻이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너무 식상하니 좁힌다.

그 자신 잘 알고 있다 생각하겠지만 진짜로 모르는 것이 가까운 사람들이다.




저 조명치만 해도 내가 다른 방식으로 다른 시선으로 다루기 시작했을 때도

그 일환으로 나는 그의 복장 패션을 그런 일에 종사하실 어부들께는 누가 될 수 있음도 알았지만 장기매매 적출단 복장이라 했거니와

식칼과 메스만 들면 실상 딱 그 조폭영화 소재 맞다.

공무원 사회에서 개인을 띄우는 일이 어떤 불행을 초래할 수 있음을 알기에 나 하나만 해도 확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적어둔다.

더 간단히 말해 이 공무원 조직에서 개인을 부각해도 되겠느냐는 사전 탐색이 있었고

이를 위해 나는 두 사람을 따로 만났으며 그 둘이 동의함을 알고선 나도 나섰다는 사실을 이제야 밝혀둔다.

이건 죽을 때까지 김창일이 갚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도 안다. 그들이 누군인지.

하지만 알면서도 모르는 사람이 진짜로 가까이 있는 사람이다.




첫째가 당시 민박관장 김종대요 둘째가 당시 과장 이건욱이다.

김종대..다들 안다. 툭툭거리는 사람이다.

관장실에서 그를 만나 노닥이며 김창일을 탐문했더니 김종대가 대뜸 사람 칭찬하는 거 봤는가?

김창일이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대뜸 자식 지가 다한 것처럼 떠드는데 처음에 고등어(이건 내 착오일 수도 있으나 암튼 조명치는 아니었다.)를 들고 와서 빠꾸났거든? 지가 다하긴 뭘 다해?

이런 식이었으니 누구나 그런 김종대를 안다.

그런 틱틱거림 뒤에 숨은 애정을.

그 자리서 내가 이런 말을 했다.

형님, 형님 시대와 형님 직전 시대 민박은 너무나 쪼그라들었소. 그 쪼그라든 민박이 조명치로 다시 우뚝 섰으며 형님은 그 조명치를 주최한 관장으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오.

저런 미친 놈 그래도 믿어주고 천방지축 날뛰도록 해 준 이 형님임을 잘 압니다.


주말이면 어부인 계시는 금산 가서 이리 논다.


다음이 이건욱.

그 또한 지금보다 젊은 시절엔 한 성깔하고 공무원 노조인가도 열심히 활동하는 열성가였으니

간단히 말하면 김창일이나 이건욱이나 똑같은 천방지축이다.

물론 지금이야 나이 들고 직책이 직책이니만큼 그 옛날 모습은 많이 줄었지만

이건욱은 더한 방목주의자라 김창일을 매버릭처럼 놔두었다.

그 무렵 그가 틈만 나면 하는 말이

저 친구를 어떻게 제어해요? 지 맘대로 하도록 냅둬야 해요.

누구나 그렇듯이 독불장군으로 크는 사람없다.

이를 운때라 하는데 좋은 사람을 만났고 그 좋은 사람들과 협업에서 새로운 인문학 스타가 배태한다.

지금 그의 신간 물고기 인문학을 논평할 처지가 아니므로 이로써 김창일론을 갈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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