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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김유신을 전면에 끌어올린 학술대회[1] 돈과 조직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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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한 시대 편린으로서, 그리고 김태식 궤적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정리해두어야겠다. 

보다시피 2007년 10월 19일 금요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신라사학회와 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가 주최하는 '흥무대왕 김유신, 새로운 해석'을 주제로 내건 학술대회가 열렸거니와 

이때는 김창겸과 김태식의 전성시대였으며, 이네가 주축이 되어 조직한 신라사학회가 한창 잘나가던 시절이었다. 

신라사 전문 연구를 표방한 신라사학회가 김유신을 빼놓을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전면에 내세워야 하는 문제적 인물이었으니, 그런 말만 무성하다가 결국 신라사학회가 칼을 빼들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이 학술대회를 준비하면서 나는 창겸형이랑 누가 그리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런 역할 분배가 이뤄졌으니,

형은 조직과 사람 끌어오기를 했고, 나는 돈과 장소 섭외 담당이었다. 

형은 누차 이야기했듯이 일찍이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한민족대백과사전편찬에 생평을 종사하면서 애늙은이가 되어 학회의 대표적 마당발이 되어 있었으니 

이 마당발 인맥이 사람들을 긁어모으는 결정적인 힘이었다.

그에게 신세진 사람들이 많으니, 그 참석자 면면을 보면 역시 그의 힘은 소문대로 막강했다. 동국대랑 협업도 그의 생각이었다. 

저 학술대회 편제 구성을 보면 후원 서울역사박물관, 고려문화재연구원, 한백문화재연구원, 그리고 계간 한국의고고학이다. 

저게 뭐냐 하면 서울역박은 장소제공, 나머지 기관은 모조리 나한테 돈 뜯긴 기관이었다. 

학술대회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그 돈을 어디서 긁어오느냐가 문제였으니,

당시는 김태식이 무소불위하던 시절이라, 문화재 조사기관으로는 저 두 기관만 접촉했고, 그리고 한국의고고학은 그 출판사 사장 최병식 형이 워낙 나랑 막역해서 뜯겼다. 

고려는 당시 김병모 선생이 원장겸 이사장 아니셨나 하는데, 이 양반 김해김씨라, 문중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섰고, 그래서 선생께 말씀드려 후원을 받았다.

한백이야 당시 원장 겸 이사장 박경식 형과 부원장인가로 있던 서영일 형이 모두 나랑은 혈맹이라, 그런 인연에서 부탁했다. 

다른 기관들도 접촉할까 했지만, 나는 돈이 많으면 많은대로 분란이 일어나는 꼴을 봤기에 최소한 비용만 마련하는 것으로 낙착을 봤다. 
 

왼쪽으로부터 김수태 조범환 윤용구 김창겸
왼쪽부터 김창겸 정구복 신형식 이영호 권덕영

 
창겸 형이 모신 사람들이다. 

그러고 보니 20년 가까이 지나는 세월 동안 신형식 선생은 고인이 되셨고,

당시에 이미 원로셨던 몇 분은 지금 건강이 안좋다는 말이 들린다. 
 

왼쪽부터 이근직 김병곤 주보돈
좌로부터 김창겸 김병모 김복순 박현숙 조범환. 김복순 선생은 당시 동국대 연구소 대표였다.

 
보니 황망하게 우리 곁을 떠난 이근직 형도 보인다. 

대회는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이야기가 길어져 다음 편으로 넘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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