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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공동묘지인 경주 금척리 고분군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조선 세종 시대에 만든 동전이요 엽전인 조선통보朝鮮通寶가 발굴됐다고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가 말한다.
이 동전은 2024년 A지구 분포조사에서 출토됐다는데 글쎄가 이 맥락에 어찌되는지 모르겠다.
이곳을 터전으로 산 사람들이 남긴 것인지 아니면 도굴꾼들이 쓴 것인지
암튼 조선통보는 기록을 보면 태종 15년(1415)에 처음 언급하면서 등장하지만 본격 제작은 세종 5년(1423) 때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동전? 화폐? 좀체 한반도에서 제대로 정착한 적이 없다.
이 나라는 근간이 물물교환이다. 단군의 후손들은 돈을 모른다.
그러니 흐지부지 세종 27년(1445) 이래 여러 문제가 있다 해서 땡 치고 인조 11년(1633)에 다시 사용되게 된다고.
같은 글자를 썼지만 글자체를 통해 시대구분이 가능하다는데
세종 때 엽전은 해서체를 썼고 인조 때는 팔분체를 썼다는 것.
예컨대 같은 ‘鮮(선)’이라는 글자도 해서체는 ‘灬’라고 쓰는 데를 팔분체는 ‘火’으로 적었다는 것.
이로 보건대 금척리 조선통보는 세종 때 것으로 본다고 한다.
자[尺]는 어디가고 엽전 딸랑 나온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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