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UcVRWoxPsDg
약칭 엄창묘严仓墓라고 하며, 좀 더 길게는, 또 무덤이 한둘이 아닌 떼거리라
엄창 전국 고묘군严仓战国古墓群이라고도 하며, 엄창고묘严仓古墓 혹은 엄창고묘군严仓古墓群 따위로 다양하게 쓴다.
전국 시대 초나라 대형 공동묘지인 저곳에 자리잡은 무덤 중에서도
엄창 환자총严仓獾子冢이라는 데가 발굴조사를 거쳐 꽤 이름 있는 무덤으로 등극했거니와,
위선 저 獾子冢이라는 지명이 생소하기 짝이 없으니
저 환獾이라는 글자가 오소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럼 오소리 새끼 무덤?
이 무덤은 대형 초묘楚墓, 곧 초나라 시대 무덤이라, 이 무덤은 엄창1호묘严仓 1 号墓라고도 한다.
이런 춘추전국시대 제후국은 춘추시대인가 전국시대인가를 중대 분기점으로 삼거니와,
이 무덤은 전국시대 초묘다.
호북성 문물고고연구소湖北省文物考古研究所라는 기관에서 긴급 발굴조사를 벌였다.
이 무덤을 포함한 진창고분군은 초나라 수도 기남성纪南城이라는 데서 25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며,
기남성을 중심으로 그 사방에 포진하는 초나라 시대 공동묘지 중 고위급들이 묻힌 곳으로 간주된다.


이 무덤떼는 하북성 형주시荆门市 사양현沙洋县 후항진后港镇 송림촌松林村에 위치하거니와
개중에서도 저 오소리무덤이 가장 규모가 크다 한다.
2009년 10월 연구소가 이 오소리총 무덤과 그 부속 거마갱车马坑 조사를 개시했으니
그 결과 이 무덤은 봉토 기준 높이 약 8m, 바닥 지름 약 50~60m, 남쪽 잔존 길이 약 41m, 폭 5~6m 규모로 드러났다.
묘구墓口는 길이 34m, 폭 32m이며, 이 묘구에서 곽개판椁盖板까지 깊이는 10.5m, 동쪽 묘도东侧墓道는 길이 약 19m로 묘구에서 덧널판椁盖板까지 15개 계단이 있음이 드러났다.


곽개판은 길이 6.4m, 폭 5.5m로 목판 15개가 동서로 배열되었다.
무덤 서쪽에 위치한 이 무덤 거마갱은 남북으로 나란한 1호 구덩이와 2호 구덩이로 구성된다.
북쪽 1호 구덩이는 현대에 흙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파괴되었다.
남은 길이 18.5미터, 너비 4미터, 깊이 1.4~1.9미터. 이에서는 총 5량 수레와 말 12마리를 수습했다.
개중 2호차에는 4마리 말이 있었다.
2호 구덩이는 길이 3.16미터, 너비 2.75미터, 깊이 0.8미터로, 수레 한 대당 두 마리 말이 있다.
전차는 앞뒤로 형衡(두 마리 말이 한 수레를 끌 때 균형을 잡는 데 사용되는 기구), 멍에轭[말 목에 거는 물건], 원辕, 바퀴(바퀴당 32개 스포크), 객차로 나뉘어 상당히 잘 보존된 상태다.
전차 옆에는 길이 5.6미터 깃대가 부서진 채 놓여 있다.


보존된 깃대旗杆, 동극铜戟, 동과铜戈, 동요铜铙, 수레 바깥쪽 "칠갑漆甲" 및 권장权杖일 가능성이 있는 수홍칠 목대 髹红漆木杆 등을 분석한 결과,
이 차량은 전형적인 지휘 전차에 속하며, 이는 초나라 수레와 말 구덩이에서 처음 발견된 것으로,
초나라 지휘 전차 연구의 구체적인 사례를 제공한다.
발굴 유물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 거여车舆 안에 있는 12자 명문 동과铭文铜戈는 제작 연대가 위魏 혜왕 26년(기원전 344년)임을 증명하며,
이 오소리총 연대가 344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없어 전국 중기 후기 단계에 속했을 가능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
수레는 비교적 오래되어, 무덤 주인이 생전에 자주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고대 무덤 관례에 따르면, 홀수는 남성, 짝수는 여성이다.
비록 출토 차량은 6대지만, 마상 배치 대칭식 원칙에 따라 마상에는 7대 마차가 있어야 하며,
1호 구덩이 한쪽 끝에는 마차 한 대가 파손되었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수레와 말 구덩이는 하나이며, 따로 매장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왜 이 무덤에 두 개 구덩이가 생겼을까?
수레는 왜 따로 묻혔을까.
이는 아마도 무덤 주인이 7대 마차를 매장하는 대우를 충분히 받지 못해 사후에 추봉되거나 규격에 맞게 매장되었기 때문에 분리 매장되었을 것이다.
철기, 목기, 청동기, 귀중한 죽간 및 남아 있는 두개골도 잇따라 출토되었다.
죽간竹簡의 숙자와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덧널실椁室에서는 청동 병기와 소량의 초나라 개미코돈[의비전蚁鼻钱]이 발견되었고,
덧널실 서쪽 사랑채椁室西厢에서는 비교적 완전하게 보존된 두개골도 수습되었다.
고고학자들은 이 두개골이 묘주인의 두개골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현장에서는 일부 목기와 비교적 귀중한 철기도 발굴되었다.
옆방侧室에서 수습한 고풍스러운 모양 비교적 큰 철기는 모양이 마치 괭이锄头와 같고, 손잡이는 나무다.
소개에 따르면, 춘추 시대에는 철기가 농업과 군사 등 분야에서 점차 응용되었으며, 전국 시대에도 철기는 여전히 비교적 소중했다.

출토 유물로 보아 무덤 주인은 무장대부武将大夫 급일 것으로 판단된다.
고대 천자가 탄 마차는 6필마匹马이지만, 이 무덤 주인이 탄 마차만 4필에 달할 정도로 그 신분이 뛰어났다.
발굴이 완료된 마차 구덩이 상황을 보면, 무덤 주인은 무장일 것이다.
초나라 무덤은 계단이 높을수록 무덤 주인의 신분을 대표하며,
오소리 총은 무덤 입구에서 덧널까지 총 15개 계단이 있어 무덤 주인은 대부의 등급에 해당한다.
후기 정리 과정에서 우한대학武汉大学 간백연구센터简帛研究中心 리톈홍李天虹 교수 등은 고분에서 출토된 파손된 죽간이라는 단서를 바탕으로
묘 주인 신분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었고, 최종적으로 마차 주인을 초나라 대사마大司马 도활悼滑로 확정했다.
또한, 널과 덧널에 난 신비로운 붉은 발자국红色脚印은 전국시대 초나라 무덤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으며, 전문가들은 초나라 장례 풍습으로 추정한다.

초나라 사람들은 무당을 믿으며, 장례 풍습에서는 고인의 후손들이 관에 발자국을 밟아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다.
《史记·甘茂传》及贾谊《新书·过秦上》则作“召滑”,滑作涓,前人已说明:“皆一声之转”。 [2]
도활은 문헌에서는 여러 가지로 쓰여 있는데, 《전국책·초책사战国策·楚策四》는 "도활悼滑"을, 《조책삼赵策三》은 "淖滑"을, 《한비자·내저설하韩非子·内储说下》는 "소활邵滑"을, 《사기·진본기史记·秦本纪》는 "소활昭滑"이라 했다.
《사기·감무전史记·甘茂传》과 가의贾谊의 《신서·과진상新书·过秦上》은 "召滑"이라 적었으니, 滑을 곧 涓이라 해서 앞선 사람들이 이미 설명했듯이 "모두 같은 말이 변한 것"일 뿐이다.
진창 고분군 주묘인 오소리총 발굴 현장에서 도굴 구멍 3곳이 발견됐다.
주변 지형이 낮고 평탄하여 엄창 고분군은 홀로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어 도굴꾼들이 탐내는 눈에 띄는 대상이 되었다.
오소리 무덤 봉토 더미에서 직경 2.2미터, 1.8미터, 1.6미터 도굴 구멍 3개가 발견되었으며,
그중 가장 얕은 도굴 구멍은 깊이 5미터, 가장 깊은 곳은 19미터에 달한다.

가장 깊은 도굴은 2007년 여름 한 도굴에서 나왔다.
경찰은 곧 사건을 해결하여 범죄자를 체포하고 사건을 해결했으며, 문화재 부서도 도난당한 구멍을 메웠다.
제때 신고와 깊은 지하수 때문에 도굴꾼들이 도굴하기에는 너무 늦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도난당하지 않았더라도, 무덤이 고대 도굴꾼들의 검은 손에서 안전하게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진상이 어떤지는 발굴과 정리가 완료된 후에야 최종 결론을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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