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상 그 개창주 이름을 따서 위만조선이라 하는 존재는 본래 국명이 조선이라,
진 시황제에 의한 천하통일도 얼마 못 가서 산산조각 나고 그 와중에 유방이 천하를 쟁패하는 과정에서
유방과 같은 고향 친구로서 그를 도운 절대의 원훈대신 노관盧綰이 그 공로로 한 제국 동북쪽 가장 변방인 연燕 땅을 봉국으로 하사받으니 그 중심은 지금의 북경이었다.
이것이 한 제국 성립 초반기 봉국封國들이다.
저 연燕이 노관이 분봉받은 땅이라, 저 영역 표시는 잘못됐다.
그렇다면 실제 연국은 어느 정도였는가?
넉넉 잡으면 저 정도요, 실은 저보다도 동쪽 경계는 훨씬 더 서쪽으로 들어와야 한다.
뭐 이런 말만 하면 재야사학이니 사이비역사학이니 유사역사학이니 지껄이더라만, 지랄이고 나발이고, 이게 맞다!
그 이유는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각설하고 다시 본론 노관과 유방 이야기로 돌아간다.
헛간은 들어갈 때랑 나올 때 마음이 다른 법이다.
유방은 이성異姓 제후들이 강대해질 것이 두려웠다.
이러다간 내가 애써 일군 것들을 다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초조가 엄습했다.
하긴 뭐 지가 다 했다 하지만, 주변 도움없이 어찌 천하를 제패했겠는가?
하지만 일단 권력은 잡으면 마음이 바뀌는 법이요, 실제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잘나서 됐으리나는 막연한 생각이 일단 권력을 잡으면 신념으로 굳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저 이성 제후들을 하나씩 처단해 나가는데, 다 나가 떨어지고 막판에 남은 이가 노관이니 그 멸망은 시간을 잴 뿐이었다.
유방 집권 12년 차인 기원전 195년, 마침내 반란을 빌미로 유방은 노관 처단을 선언한다.
처음에는 그런 대로 파상공세를 막아내던 노관 역시 역부족이라 판단하고서는 냅다 흉노로 도망친다.
왜 흉노였을까?
당시 흉노가 강대한 이유도 있고, 또 당시 정세로는 흉노가 한을 물로 볼 때라, 흉노가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 믿었다.
그만큼 흉노는 강대했다.
단순히 흉노가 바이킹이 그런 이미지처럼 단순무식해서였을까? 아니었다.
그네들도 세상을 경륜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으며, 그에서 외교술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잘 알고 있었다.
흉노는 강한 군사력에 바탕한 이런 외교술을 무기로 한 제국을 점점 더 강하게 포위하고 들어갔다.
지금의 몽골 고원을 중심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한 제국을 향하는 흉노는 북쪽에서는 자신들이 직접 한 제국을 겨냥해 호시탐탐 만리장성을 넘나드는 강온전략을 구사하는 한편
그 오른쪽과 왼쪽에다가는 동맹국들을 포섭해 한 제국을 견제케 한다.
이것이 흉노가 한 제국을 포위한 간단한 개념도다.
서역 36개국인가가 흉노의 우익右翼이요, 그 오른쪽 조선, 곧 조선과 그것을 대체한 위만조선이 그 좌익左翼이었다.
이 개념도를 이해해야만 왜 위만이 그렇게 단기간에 저 일대에서 거대한 제국을 형성했는지 그 비밀을 만천하게 폭로하게 된다.
더 간단히 말해 조선 혹은 위만조선 뒤에는 흉노라는 든든한 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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