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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같은 태풍이 사이클론이 되고 허리케인이 되지만...

 

 

인도 동부에 대형 사이클론 접근…"수백만명 대피" | 연합뉴스

인도 동부에 대형 사이클론 접근…"수백만명 대피", 김영현기자, 국제뉴스 (송고시간 2020-05-1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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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름도 다 까먹었다고 생각했다. 하긴 그 이름이라 해서 그런 게 있는 갑다 해서 그걸 디립다 외운 때가 30년을 훨씬 더 거슬러올라가니, 그래도 그런 망각에서 사이클론이란 말을 듣고는 무척이나 친숙하게 떠올리니 신기할 뿐이다. 

 

시골 깡촌 출신인 나는 문명세례가 동년배들보다는 대체로, 그것도 훨씬 늦은 편인데, 인도양에서 주로 인도 대륙 쪽을 향해 들이친다는 저 태풍을 사이클론Cyclone이라 부른다는 사실은 물론이요, 그런 열대성저기압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고등학교 지리시간에 비로소 알았다. 그때 허리케인Hurricane이라는 존재는 이미 들었는지 아닌지 자신은 없지만, 내가 가장 놀란 점 중 하나가 태풍颱風, Typhoon 이라는 자체가 one of them이라는 사실이었다. 

 

 

 

 

태풍이야 그 직간접 영향권이 한반도라, 우리가 매우 익숙할 수밖에 없는 숙명이어니와, 카리브해를 비롯한 대서양 북동부를 주무대로 암약하는 허리케인을 유명하게 만든 절대의 힘은 미국이다. 같은 열대성저기압이 지역에 따라 이름을 바꾼 데 지나지 않지만, 그것이 어디를 덮치느냐에 따라 유명세는 분명 다른 것이다. 역시 태풍도 미국을 덮치고 봐야 한다. 

 

미국이 주무대이기에 이를 직접 주무대로 다루는 영화 드라마가 넘쳐나거니와, 무엇보다 미국이 주무대이기에 뉴스라는 형식을 통해 시시각각 그 소식은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소비된다.

 

그 점에서 사이클론은 억울할 수 있다. 한반도를 기준으로 하면 허리케인보다 훨씬 더 가깝고, 그것이 미치는 인구 규모는 허리케인이 비할 수가 없다. 인도만 해도 인구가 대체 얼마인지 알 수가 없어 10억이 넘는 것만 확실하고 방글라데시만 해도 1억을 가뿐히 넘는다. 이런 거대 인구밀집 지역이 언제나 사이클론에 노출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직 허리케인을 부각한다. 솔까, 저 사이클론만 해도 우리 공장에서 인도 특파원을 둬서 저만치라도 전하지, 그것 아니었으면, 사이클론이 발생했다는 사실도 아무도 모른 채, 혹은 아무 관심도 기울이지 아니한 채 지나가고 말 것이다. 혹 모르겠다. 그것이 덮친 한복판에 우리 기업 공사현장이 있었더래면 다른 양상이 벌어질지도. 

 

그래서 일단 힘이 세고 봐야는지 모르겠다. 같은 태풍이라도 기왕이면 미국을 덮쳐야 이름을 남긴다. 젤 센 놈을 골라야 한다. 그래야 눈길이라도 준다. 

 

이 점을 예리하게 인식한 조선시대 지식인이 있다. 정약용이다. 그는 왜 내가 중국에서 태어나지 못했는가를 한탄했다. 큰물에서 놀고 싶은 욕망이었고, 그런 큰물에서 내가 태어났더래면, 온 세상이 나를 알아주었을 것이라는 그런 확신이 있었다. 옛날에 그런 증언을 접하고는 만가지 잡상이 오락가락했는데, 요새는 그 심정 충분히 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