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사실 말라리아는 21세기에도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질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P. vivax 라는 말라리아 중에서는 비교적 치사율이 낮은 순한 넘이 창궐했기 때문에 이 병에 대한 경각심이 그다지 높지 않은데 사실 말라리아는 아직도 열대지역에서는 많은 수의 사망자를 낳는 무서운 전염병이다.
말라리아 퇴치법에 획기적인 공헌을 한 의학자에게는 따라서 아직도 엄청난 찬사가 주어진다. 최근까지 노벨 생리 의학상 수상자 중에 말라리아 연구자가 종종 나온다는 사실은 이 질병에 관한 의학계의 관심을 잘 말해 주는 것이다.
말라리아는 저개발국이나 개발 도상국의 경우 감염률이 높고 치사율도 높기 때문에 WHO 등 국제 보건 기구의 주요한 관심사이기도 하다.
이처럼 21세기에도 아직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전염성 질병이므로 이 병이 왜 아직도 이렇게 창궐하고 쉽게 조절하기 어려운가 하는데 대해서는 의학계에서 관련 연구가 많이 나와 있다.
우선 말라리아 감염이 모기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모기가 번식하여 이를 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면 누구나 제대로 배수 되지 않은 저습지, 늪, 호수, 개울의 존재를 떠올릴것이다. 모기의 유충이 이런 장소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세 유럽의 경우 그때까지도 제대로 배수가 이루어지지 않은 저습지와 늪 지대가 상당히 넓게 펼쳐져 있었는데 이 당시에는 말라리아가 무려 핀란드 지역에 까지 창궐하고 있었다고 한다. 말라리아라고 하면 열대지방에서 주로 발병하여 모기가 활동하기 어려운 추운 지방이라면 걱정 없을 것이라는 우리 생각과는 다른 양상이다. 유럽에서는 이런 저습지, 늪지대가 체계적으로 배수되고 관리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모기의 번식이 급격히 줄고 말라리아 감염률도 떨어지게 되어 오늘날 보는 것 처럼 지중해 연안으로 그 발생이 위축되었다.
그렇다면 습지 배수와 같은 작업이 농업 발전과 관련이 있는 이상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간섭, 예를 들어 농경지의 확산, 개간 등의 작업이 많이 이루어지게 되면 말라리아는 줄어들까?
적어도 방치된 저습지와 늪과 호수가 사라진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농업의 진보와 말라리아는 서로 역비례하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20세기 후반 저개발국에는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업생산을 올리고자 하는 시도가 많이 있었다. 이 나라들에서는 농경지가 개간되고 수리시설이 확충되는 등 농업생산 기반시설의 확충이 많이 시도되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들 나라들에서 말라리아가 줄기는 커녕 더 늘어난 것이다. 말라리아가 늘어났다는 것은 모기번식이 거의 억제되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 모기들은 어떻게 그 수를 불려갔던 것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관리되지 않고 방치된 저습지나 늪에서만 모기가 번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논을 생각해 보자. 논물은 저습지 만큼이나 훌륭한 모기 번식처이다. 저습지를 배수하여 개간하는 대신 그 지역에 논이 들어선다면 모기는 줄어들지 않고 말라리아는 줄지 않는다.
특히 논과 밭이 공존하지 않고 쌀농사가 점점 독점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면 전체 경작지에서 고인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올라간다.
다음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 경작지를 관리하게 되면 저습지만 배수하고 끝나는것이 아니다. 오히려 농작물은 보다 많은 물을 필요로 하므로 수리시설이 필요하게 된다. 농업용수의 저장고인 수리시설은 곧 모기가 쉽게 번식할 수 있는 장소가 된다.
또 한가지 주목할 것은 현대 의학자들은 말라리아가 번식하는 이유 중 하나로 산림훼손을 많이 지적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한번 보자.
실제로 말라리아 모기는 산림이 울창한 지역보다는 산림이 파괴된 곳에서 보다 잘 번식한다. 이런 상황은 아마존 유역에서 증명된 바 있는데 원래 그 수가 많지 않던 말라리아 모기가 산림이 훼손되는 곳에서는 더 쉽게 번식하는 현상이 목격된 것이다. 흔히 울창한 산림에는 말라리아 모기가 들끓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이러한 현상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도 자주 목격된다고 한다. 말라리아 모기는 나무가 없는 곳에서 더 많이 발견된다. 토지가 얼마나 산림에 덮여 있는가 하는 것이 말라리아 감염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은 케냐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고 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산림이 훼손되면 해당 지역 기온이 올라가 말라리아가 번식하기 유리해 진다.
산림을 훼손하여 농경지로 바꿀 경우 필연적으로 인력에 의해 경작지를 평평하게 하는 작업을 수행하는데 이 과정이 물이 더 고이기 쉬운 구조를 만든다.
현대 의학은 농업의 발전과 산림남벌, 개간이 말라리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창궐하게 한다는 것을 잘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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