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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당탕 서현이의 문화유산 답사기

곧 사라져 갈 것들을 위한 박물관의 필요성

by 서현99 2021.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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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동 강석호 가옥(2019)
강석호 가옥 내부(2019)
강석호 가옥, 손을 많이 댔지만 당시 주인의 경제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100여 년의 시간이 쌓여 있는 집이다.
서천동에 남은 유일한 기와집(지금은 지붕 수리를 많이 했지만)이다. (강석호 가옥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지금 소유자분은 황00님이시다.)
몇번 갔었지만, 그때마다 아무도 안계셨는데,
이날은 소유자분을 만났다. 원래 2,800평 정도 되는 땅이었는데 주변이 도로편입되어 보상도 받고, 일부는 팔기도 했지만, 이집을 사서 왔을때 좋아하던 부모님이 아직도 생각나서 여기만 팔지 못하고 있다고 하셨다.
연세가 70이 넘었다고 하시니, 아마도 이 집을 볼 수 있는 시간도 이제 얼마 안 남은 것 같다.
(2019.9.29.)

* 송광사 비림 인근의 석각에는 ‘칙령 남여혁파 기해 강석호(勅令 籃輿革罷 己亥 姜錫鎬)’라고 새겨져 있다. 즉 ‘왕명으로 남여를 혁파한다. 기해년(1899) 강석호’라는 뜻이다. 강석호는 고종황제 당시 환관 가운데 최고의 지위인 상선(尙膳)에 올랐고,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옮겨가는 이른바 아관파천을 단행할 때 막후역할을 했다. 이때 고종황제를 업어서 모셨다고 하며, 또 이준 열사를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하는 헤이그밀사 사건에서도 고종황제와 헤이그밀사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김태형 선생님 첨언]


얼마 전에 알았다. 이 100년 된 집이 헐렸다는 것을.
대문에 있던 저 가옥조사 표식을 꼭 수집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고 새로 건축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중간에 한번만 더 가봤더라면, 2년 전에 집을 헐게 되면 미리 알려달라고 얘기하고 왔었더라면, 뭔가 남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그동안 기흥구, 수지구 쪽은 이렇게 사라진 집들이 얼마나 많았겠냐만, 비교적 개발이 덜 된 처인구는 아직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곧 여기도 원삼면에 SK반도체 클러스터 단지 개발이 들어올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보정동엔 보정동 플랫폼시티라는 개발사업이 기다리고 있다.

어느 집 마루밑에 있는 농기구, 이제 이런 것들은 어디로 가야할까?



발굴해서 나올 유물들은 그나마 절차에 따라 국가귀속 처리되어 박물관으로 간다지만, 마을 상여집, 정미소, 대문 명패 등등 이런 생활 유물들은 갈 곳이 없다.

몇 번 얘기한 적이 있지만, 현재 용인시박물관은 10년 전 동백지구 개발당시 기부채납 받은 시설이다. 그동안 증개축이 없던터라 지금 수장고는 여유가 없다. 규모있는 용인시박물관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10년만에 상설전시실을 개편한 용인시박물관, 이제 좀 더 체계적이고 규모있는 박물관으로 도약이 필요하다.



백만대도시, 특례시, 문화도시, 이런 타이틀 안에 실질적인 문화인프라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이런 생각, 이제 더이상 혼자서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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