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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이야기

"조선시대 사람이 아니라서 다행" 구한말 검안 자료에 담긴 불쌍한 인생들

by 신동훈 識 2025.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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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근 풍ㅎ속화 한 장면 태장치기 곤장치기다.

 
구한말 검안 자료에는 

대개 살인사건 관련인지라 

요즘으로 치자면 강력사건이다. 

그리고 남아 있는 자료는 수도권 자료는 별로 없고 

전부 지방 깡촌 향촌사회 이야기다. 

그 동네에도 양반이 있고 평민이 있고 그렇다. 

노비는 이미 구한말 검안 자료에 많이 나오지 않는다. 

대개의 경우 평민들끼리 치고 받거나 

아니면 평민과 양반이 치고 받거나 하며

종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나오긴 하는데 우리 생각만큼 비굴하기만 한 인생들은 아니다. 

이 향촌사회의 콩알 만한 자존심

우리는 양반 자손이라고 해 봐야

그 양반 자손이나 평민이나 먹고 사는걸 보면 별 차이도 없어 보인다. 
 

김준근 풍속화. 범인 색출

 
가끔 그 향촌사회 누대 양반집도 강력사건에 휘말린 경우도 나오는데 

그래봐야 시골양반이라 

경화사족의 힘이나 권위에 비하면 택도 없는 인생들이다. 

이런 불쌍한 인생들끼리 술먹고 깽판을 치거나 

작은 욕심을 못 이겨 사람을 죽이고는 취조를 받는 것이다. 

검안에는 매우 점잖게 조사가 이루어진 듯 해놓았지만, 

지난번 조사 때도 딱 잡아떼던 인간이 이번 조사에서는 모두 자복했다고 적어 놓는 걸 보면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짐작이 갈 것이다. 

구한말 검안 자료를 볼 때마다 

내가 저 시대에 저 꼴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스럽게 여긴다. 

저 바닥에 양반으로 태어나봐야 평민으로 태어나 봐야

뭐 그리 대단할 것이 있었겠는가.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는 꼴로 

서로 다투고 죽이고 했던 이야기를 읽고 나면

저 시대에 내가 태어나지 않은 것이 이렇게 다행스러울 수가 없고

내가 태어난 나라가 조선왕국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인문학적 향취에 빠져 지내는 분들은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저 검안자료에 나타난 그 향촌사회의 악다구니를 보고 있노라면 

이승만이 이야기 했다던가, 

나라가 망한 것은 안타깝지만

조선이 망한 것은 속이 시원하다고. 

딱 검안 서류를 보고 나면 드는 생각은 그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 [편집자주] ***
 
늘 하는 이야기지만, 일제에 대한 증오 때문에 곧잘 망각하는 대목이 

일제 식민지 강압통치에 견주어 조선왕조의 그것은 몇백 배나 폭압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일제에 대한 증오가 조선왕조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한데 현실은 면죄부를 넘어 심지어 고종과 대한제국에 대한 낙원론까지 등장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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