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후기, 살인사건의 상당수가 산송, 즉 조상들 묏자리 때문에 발생했다는것은 잘 알려져 있다.
남의 선산에 자기 조상의 묘를 슬쩍 묻거나 여기가 네 땅이냐 내땅이냐를 두고 발생하는 분쟁들로 이런 싸움은 가문의 명예를 걸고 치고받기에 살인사건으로 비화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런 산송이 비일비재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부정확한 측량과 경계의 설정이었다.
산송이 발생하면 아래 그림과 같은 산도형을 그려 제출하는데 그림을 딱 보면 싸움이 안 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게 그려놓았던 것이다.
모호함은 약자와 강자가 모두 선호할 때가 많다.
약자는 모호함 속을 파고 들 기회를 보게 되고 강자는 그 모호함을 기화로 약자를 강박할 기회를 가질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근대적 측량 기법이 도입되어 땅을 측량하게 되면 모든 사람으로 부터 원성을 사게 되겠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산송의 무한 반복을 종식시킬 방법은 없었다 하겠다.
**** 편집자注 ****
내가 매번 지적하듯이 근대는 빗금인 경계를 선으로 확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경계가 확정되지 않고서는 저런 소유 분쟁은 빈발할 수밖에 없다.
경계가 빗금이면 그 빗금이 내 땅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며, 그 주장하는 사람은 언제나 복수일 수밖에 없다. 그 빗금을 일거에 말살한 일이 바로 조선총독부에 의한 토지조사사업이다.
토지조사사업은 무엇인가? 빗금에서 선으로의 대체다.
강포한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인의 토지를 침탈하고자 토지조사사업을 했다? 얼토당토 않은 말이다.
구시대 잔재를 쓸어버리기 위해 인구센서스와 함께 가장 시급히 도입해야 하는 문제가 바로 토지조사사업이었다.
빗금의 온상 양안量案, 근대는 빗금에서 선으로의 이동이며 토지조사업은 그 필연이다
빗금에서 선으로, 근대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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