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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열전
삼국유사 권2 기이(紀異) 제2 후백제(後百濟) 견훤(甄萱) : 천성(天成) 2년 정해(丁亥. 927) 9월에 견훤은 근품성(近品成. 지금의 산양현<山陽縣>)을 쳐 빼앗아 불을 질렀다. 이에 신라 왕이 태조에게 구원을 청하자 태조는 장차 군사를 내려는데 견훤은 고울부(高鬱府. 지금의 울주<蔚州>)를 쳐서 취하고 족시림(族始林. 혹은 계림鷄林 서쪽 들이라고 했다)으로 진군해 졸지에 신라 서울로 들어갔다. 이때 신라왕은 부인과 함께 포석정(鮑石亭)에 나가 놀고 있었으므로 더욱 쉽게 패했다. 견훤은 왕의 부인을 억지로 끌어다가 욕보이고 왕의 족제(族弟) 김부(金傅)로 왕위를 잇게 한 뒤에 왕의 아우 효렴(孝廉)과 재상 영경(英景)을 사로잡고, 나라의 귀한 보물과 무기와 자제(子弟)들, 그리고 여러 가지 공인(工人) 중에 우수한 자들을 모두 데리고 갔다. 태조는 정예(精銳)한 기병(騎兵) 5,000을 거느리고 공산(公山) 아래에서 견훤을 맞아서 크게 싸웠으나 태조의 장수 김락(金樂)과 신숭겸(申崇謙)은 죽고 모든 군사가 패했으며, 태조만이 겨우 죽음을 면했을 뿐 대항하지 못했기 때문에 견훤은 많은 죄악을 짓게 되었다. 견훤은 전쟁에 이긴 기세를 타서 대목성(大木城)과 경산부(京山府)와 강주(康州)를 노략하고 부곡성(缶谷城)을 공격했는데 의성부(義成府)의 태수(太守) 홍술(洪述)은 대항해 싸우다가 죽었다. 태조는 이 소식을 듣고 말했다. “나는 오른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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