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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로 남은 나주 영동리의 고대인들
2020. 6. 14. 21:05
맨 뒤에 보면 본래 원고 작성일자가 2016. 6. 10로 찍혔다. 저때는 내가 아마 해직시절이고 《직설 무령왕릉》을 출간한 직후라 겸사겸사 전국을 목적없이 유람할 때이며 아마 그 무렵에 저쪽에서 강연이 있지 않았나 기억하는데 암튼 이 나주 영동리 고분에 얽힌 일화도 하나 얘기해둬야겠다.
그곳 출토 저들 인골을 전시 중인 나주 복암리전시관은 이때나 저때나 운영주체가 같은 동신대산학협력단이라(나주시는 일정기간마다 이 전시관 운영 주체를 선정한다.) 관장은 이 대학 이정호 선생이 한다.
목포대 고고학 1기인 그는 내가 존경해마지 않는 국내 몇 안 되는 고고학 전담 교수 중 한 명으로 요즘도 가끔은 내가 의문 나는 데를 자문하곤 한다.
동신대박물관은 영동리고분군 발견자이자 조사단이다. 이 교수는 그 발굴 책임자였으며 나는 그 발굴현장을 직접 찾아 그 소식을 전하기도 했거니와
그때 이 현장에서 강렬한 인상으로 남은 서너 가지가 있으니 첫째 신라 영향이 완연한 토기가 쏟아졌고 둘째 삼족기는 모조리 받침을 떼어냈으며 셋째 무수한 인골 출현이 그것이었다,
이 지역 고대 매장문화 특징 중 하나가 한 무덤 떼거리 시체 안치라 영동리는 인골까지 고스란히 남아 그 생생한 현장을 적나라히 노출했다. 그 무수한 인골들을 저 2016년에 복암리전시관에서 다시금 조우했으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듣자니 저들 인골은 고스란히 수습해 동신대박물관이 보관 중이었단다. 문젠 추가 연구, 특히 활용이 전연 진척이 없었다는 점이다.
당시 고고학계는 송현이가 일대 선풍을 일으킨 시점이다. 창녕 송현동고분에서 발굴한 어린 여성 순장 인골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돈 열라 들여 그 얼굴과 신체를 복원하고선 송현이라 이름했으니 당시 한국고고학에선 첫 시도였다.
이를 입맛다시며 부럽다 쳐다본데가 바로 이정호였다.
우리도 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 돈이 없다!
속이 터져 죽겠다며 하소연하기를 우리도 하고 싶다 외쳤다.
순간 야마가 돌았다. 맞는 말이다. 그래 이리 훌륭한 인골을 찾아놓고도 더는 진척이 없음을 나 역시 용서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얼굴을 복원하고 싶었다.
이정호 교수가 있는 그 자리서 휴대폰을 들었다.
서울대 고병리학 신동훈 교수를 찾아 사정이 이렇다. 당신 팀이 해줄 수 있느냐? 돈은 얼마나 드냐? 특히 얼굴 복원 얼마면 되겠는가?
신동훈 교수팀엔 마침 인골 얼굴복원 전문가 이원준이 있었다. 치과의사하다 때려지고 머나먼 스코틀랜드까지 가서 고인골 얼굴복원으로 박사까지 받고 온 특이한 이력의 친구였다.
이렇게 해서 그 자리서 신 교수를 연결했으니 이후 우여곡절이 있었겠지만 일정한 성과까지 나왔다. 송현이가 그랬던 것처럼 얼굴복원도 이뤄졌다.
무엇보다 이 일은 다른 현장에도 자극을 주어 비슷한 연구를 촉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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