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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정정길과 이기동, 눈치 주면 미련없이 사표 던지라 조언한 두 한중연 원장

by taeshik.kim 2022.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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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한국정신문화연구원으로 여전히 일컫던 1998년 이래 근 20년간 이 기관 정식 출입기자였다.

내 기준으로 기간 스쳐간 원장들을 보니 순차로 보니(괄호안은 재임기간) 9대 이영덕(1995.05.18 ~ 1998.05.17), 10대 한상진(1998.12.26 ~ 2000.12.25), 11대 이상주(2001.01.17 ~ 2001.09), 12대 장을병(2001.09.29 ~ 2004.09.28), 13대 윤덕홍(2004.11.01 ~ 2007.10.31), 14대 김정배(2008.04.21 ~ 2011.04.20), 15대 정정길(2011.04.21 ~ 2013.08.31), 16대 이배용(2013.09.17 ~ 2016.09.16)이라

이배용 집권 말기인 2015년 11월 28일 나는 연합뉴스에서 해고되었으니, 저에다가 17대 이기동(2016.09.21 ~ 2017.09.10)까지 직접 인연이 있어 그를 포함한 역대 원장 이야기를 잠깐 하고자 한다.

저 면면을 보건대 직전 그 정부에서 고관대작을 지낸 인물들이 있는가 하면, 이른바 총장 혹은 학계라 분류할 만한 인물이 섞였으니

저 중에서 이영덕 원장은 거의 기억에 없고, 한상진 김정배 이배용 셋은 한중연을 뒷걸음치게 만든 인물로 나는 분류하며, 윤덕홍 정정길 이기동 셋은 그 재임 기간 여부에 상관없이 한중연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로 나는 분류한다.

한중연은 국책연구기관 중에서는 특히 정치바람에 거센 곳이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이름을 드날린 한상진은 점령군이나 다름없는 행보를 보이며 기관을 퇴보케 한 것이 아닌가 하며, 김정배 이배용은 재임 기간 각종 독선적 기관 운영으로 파행을 빚었다.

한중연 원장 재임시절 정정길. 이 사진은 내가 그를 인터뷰하며 촬영한 것이다.


저들 역대 원장 중 오직 두 사람한테 향후 그네들 행보랄까 하는 데서 내가 조언 비스무리한 말을 보탰으니 정권 교체기에 걸린 정정길 이기동 원장 두 사람이다.

정정길 원장은 이명박 정부 비서실장이었으니 그것을 끝내고는 한중연 원장이 되었지만 재임기간 중에 같은 여권으로 정권이 옮아갔지만 그는 이명박 사람으로 분류되어 박근혜 정부에서는 결코 탐탁하게 여기는 인물이 아니었다.

동국대 사학과 교수로 한국고대사 연구에 이름을 남긴 이기동 원장은 박근혜 재임시절 말미에 저 자리에 임명되었지만 그 재임 기간 중에 이른바 국정농단 사태가 터져 촛불시위에 박근혜 정권이 붕괴하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강제 퇴위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저런 정권이 소용돌이 치던 무렵 각각 저들을 원장실에서 혹은 다른 자리에서 사적인 만남을 가지기도 했으니, 본인들이야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만, 두 분 다 나를 참말로 좋아했다고 나는 믿는다. 정정길 원장은 비서실장으로서는 이렇다 할 인상은 없고 그냥 관리용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지만 원장으로서는 참말로 괜찮은 사람이었다.

이기동 원장은 정치성향으로는 내놓은 보수 성향이라, 더구나 국정감사장에서 저 유명한 화장실 사건도 있었고 그 와중에 터진 새파란 놈들이라는 발언이 문제가 되었거니와, 나는 그의 이런 단점이랄까 하는 점들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장점이 그것들을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음이 있는 인덕이 있다고 믿는다.

개그맨 방불하는 이기동 원장이 원장 취임 전에 한 말 중에 재밌는 말이 많거니와 개중 하나가 "김 기자, 이종욱은 총장 해먹고 최광식은 관장 청장 장관 해먹었는데 나는 해 먹은 게 없어" 하기에 "왜요? 있잖아요? 동국대박물관장 잠깐 하셨잖아요? 하시다가 금새 짤리셔서 그렇지" 하고는 파안대소한 일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나는 해직 중이었다.)

같은 고대사 전공인데 이종욱 선생이 서강대 총장을 하고, 고려대 교수 최광식이 이명박 시절 승승장구한 데 견주어 나는 해 먹은 게 없다는 농이었다.

각설하고 그런 친분이 있었기에 나 역시 마음에만 담아둘 이야기를 과감히 하기도 했으니 박근혜로 정권이 확정된 그 시점 정정길 선생을 만난 자리에서는 "원장님, 저짝에서 아마 관두셨으면 하는 의사를 전달해 올 텐데 그런 움직임이 있으면 과감히 사표 던지셔야 합니다. 안 그러시면 추해지십니다"라고 했으니, 참말로 호탕한 분이라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걱정하지 마라 미련없이 사표 던진다" 했으니 실제로도 그렇게 떠났다고 기억한다.

꼭 나만이 저런 얘기를 했을 것이 아니요 본인 역시 그렇게 생각한 마당이었으니 더는 추해지고 싶지 않았으리라 지금도 생각한다.

이기동 원장 역시 박근혜 탄핵이 초읽에 들어가고 문재인 정권 출범이 확실해진 그 시점에 그의 원장실에서 저와 똑같은 말을 했으니, 그 역시 아주 정정길 원장과 똑같은 반응이었다. (해직 중이던 내가 무슨 일로 그쪽에 갔던지 기억에 아리까리한데 아마도 그쪽에서 무슨 회의가 있어 그거 참석하러 가는 길에 들렀던 것 같다.)

문제의 국감장에서 이기동 한중연 원장



그가 걱정한 것은 오직 한 가지. 정문연 포함 역대 한중연 원장 최단 기간 재임이라는 불명예였다. 이 기록은 역시 고대사 연구자였던 김철준이 보유하고 있었으니 그는 1988년 9월 14일 취임 이후 불과 불과 넉달 만인 1989년 1월 17일 재임 중 급서했다.

이걸 걱정 아닌 걱정한 셈인데, 다행히 그 기록을 깨지는 않았으니, 내가 알기로 문재인 정부에서는 그의 퇴임을 그렇게 노골로까지 강요하지는 않은 줄로 안다.

하지만 가시방석 같은 그 자리를 계속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테고 그런 사실을 본인이 너무 잘 알았으니, 그렇게 지내다가 문재인 정부 출범 넉달쯤이 지나서 마침내 사표를 던지고는 야인이 되었다.

그 자리를 그만두고 나온 뒤에 그 특유의 호탕한 말로 "그래도 내가 김철준 선생보다는 오래했어"하고 껄껄 웃었다.

정권 교체기다. 물러나는 정권에 의한 알박기 인사 논란이 한창이며, 이를 둘러싼 신구 권력 충돌이 곳곳에서 야기하는 파열음이 들린다.

정권이 바뀌어 물러난 정정길 이기동 두 선생이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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