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 황혼기를 맞기 시작하는 늙은 학자에게 있어 가장 비감한 일은
나이에 맞게 경륜에 맞게
마지막 연구를 세계와 인류를 아우르는 시각에서 보지 못하고
나라가 약해서 혹은
아는 것이 없어서
자기가 있는 좁은 울타리에서
자기가 가진 것만 지키려고 발악하다가 사라지는 일이다.
다윈이 나이 스물에 비글 호를 타고
인도에서 젊은 식민지 관료학자가 인류 사대문명을 제 나라 사람들을 제쳐 놓고 발굴한
그런 나라의 대학자들은 죽을 때
자기 나라도 아닌 남의 나라 남의 역사에 대 저작들을 쑥쑥 내놓고 생을 마감하는데
그럴 만한 힘이 없는 나라에서 태어나면 자기 나라 이야기 하나 지키기도 버겹다.
이집트 페루에 그런 대학자의 씨앗이 없었을 것이라 말하지 말라.
없는 나라에서 태어나면 베켄바우어도 밭을 갈고 있어야 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니.
우리가 없이 자라고 가진 뜻을 다 펼치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적어도 그런 비애를 자식들 세대에는 대물림하지 않고
한국에서 다윈이나 토인비, 다이아몬드, 니담 같은
세계 방방 곡곡 참견하고 다니는 대학자를 만들겠다고 하는 결단의 의지가 있어야
수십년 후라도 비로소 반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겠는가.
한국이 지금처럼 선진국에라도 들어가게 된 동력은
나는 못 배우고 못 살아도 그 가난을 자식대에는 물려주지 않겠다고 하여
우골탑을 쌓아 올린 우리네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불퇴전 의지에 말미암은 바 크거니와
그런 학문 세계의 악순환을 우리세대에서는 끊겠다는 마찬가지 불퇴전의 의지가 학계에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서 그렇지 미국 영국에서 태어났으면
니담 토인비 다이아몬드를 찜쪄먹었을 거라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자신을 포위한 그 상황을 뒤집기 위해
발악을 해야 앞으로 한국도 희망이 보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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