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방下放이라는 말이 있다.
뭐 그 배경 설명을 이야기하자면 긴데, 쉽게 말하면 이렇다.
중국혁명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여 노동계급이 형성된 사회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공업화는 전혀 없이 전 국민 대다수가 농민인 사회에서 일어났다.
지식인과 농민이 결합하여 중국판 사회주의 혁명을 이루자는 것이 곧 마오이즘이다.
그러다 보니 당원들이 농민의 삶을 잘 알지 못하여 농민과 공산당원 사이에 간극이 발생하는 것을 경계하여
혁명분자들을 농촌에 보내 생활하면서 농민과 혁명가들 사이에 상호 긍정적 영향을 주고자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방이다.
문화혁명기간 동안 중국에는 각급 기관에 하방이 무시로 강요되어
심지어는 박물관 고고학자들까지 모두 농촌으로 하방을 나가야 하는 판이었다.
쉽게 말해 유적 발굴이 있어도 몽땅 하방을 나간 판이라 유적을 팔 사람이 없는 것이다.
공리가 주연한 활.작活着 (한국명 인생)이라는 영화를 보면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던 경험 많은 의사들이 다 내쫒기고
의대에서 공부하던 의대생들이 병원을 점거하여 환자를 치료하다가
사람을 잡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당시 중국의 발굴도 그랬다.
발굴을 하다 말고 뭐라도 나오면 당장 발굴할 사람이 없고
발굴을 한다 해도 호미 몇 십 자루에 자전거 하나를 주는 정도라
당시의 중국의 역량으로는 마왕퇴를 제대로 발굴한다는 건 언감생심 무리였다고 할 수 있겠다.
***
이 마오이즘이 한국사회, 특히 대학사회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농활이 그것이다.
저 하방은 상산하향운동上山下郷運動에서 비롯한다. 문화대혁명기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주석 모택동毛澤東 지도로 이루어진 청소년의 지방에로의 징농徴農을 하방下放이라한다.
문화대혁명 시대 이전에도 있었지만 문혁 이후 도시 청년들을 지방 농촌으로 보내 육체노동을 하게 함으로써 사상 개조를 하면서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협력하도록 함을 목적으로 하는 사상운동이었다.
이 운동이 어떤 참상을 빚었는지는 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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