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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가강 1호 초묘 郭家岗一号楚墓 이른바 ”전국여시战国女尸" 훼손 사건은 도굴 과정에서 2천400년 전 전국 시대 초나라 여인 시신을 차마 눈뜨고 봐줄 수 없을 정도로 훼손했다는 점에서 중국 국내 여론을 들끓게 했으니
이 사건이 부른 가장 큰 파장은 도굴에 대한 경각심을 한층 북돋우는 한편 정부 당국에 대해서는 도굴 방지를 위한 각종 시책에 총력을 기울이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실제 이를 계기로 도굴이 기승을 부린 저 무대, 곧, 형문시 일대 초나라 대규모 공동묘지 곳곳에는 감시시설이 대폭 설치되고 경찰의 단속이 대폭 강화되었으며,
이에 따라 최근에는 적어도 이 일대 도굴은 연간 발생 건수가 1~2건으로 사실상 종적을 감추게 됐다 한다.
그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서 저 사건 가담자 중 주모자급 3명은 사형이 언도되어 총살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 사건 해결을 위해 공안 당국이 기울인 노력도 실은 눈물겨운 쟁투를 방불하는데, 그 마지막급 주모자는 1994년 사건 발생을 기점으로 물경 23년이 지난 뒤에야 붙잡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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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경찰에 마침내 검거된 그 주모자 이의해李宜海(1968년 생) 당시 행적을 보면 기가 찬데,
그는 초 장왕 묘를 비롯한 약 300여 기 초나라 무덤이 집중한 이곳 기산 초묘군纪山楚墓群 중에서 훗날 곽가강 1호묘라 일컫게 되는 무덤을 1994년 약탈하면서 마주한 전국시대 여성 시신을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질질 끌고가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미 체포된 다른 공범들 말에 따르면 이의해는 "가장 먼저 관을 열고 시신 머리를 잡아당긴 사람"이었다.
심지어 그 시체를 보고선 입 안에 보물이 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손가락으로 시체 입안을 마구 파헤쳤는가 하면 목에다 밧줄을 묶고 시신 전체를 땅에 끌어당긴 후 30미터나 끌고 가서 버리기도 했다.
23년을 추적한 경찰은 그해 3월, 풍馮이라는 성씨를 쓰는 사람이 이의해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선 체포에 이르게 됐다.
이의해는 경찰 감시망을 피해 이름을 바꾼 뒤 수십 년 동안 남해南海에 살면서 여자친구와 아들 한 명을 두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의해가 이후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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