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256)
매화(梅花)
[宋] 노매파(盧梅坡) / 김영문 選譯評
연합DB
매화와 눈이 봄 다투며
서로 지지 않으려니
시인은 붓을 놓고
관전평에 힘을 쏟네
매화는 눈보다
세 푼이 덜 희지만
눈은 외려 매화보다
향이 한 층 모자라네
梅雪爭春未肯降, 騷人閣筆費平章. 梅須遜雪三分白, 雪却輸梅一段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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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孟子)』에 “차일시, 피일시(此一時, 彼一時)”라는 말이 나온다. “이 때도 한 때이고, 저 때도 한 때다”라는 뜻이다. 계절도 끊임없이 흐르고, 세상도 끊임없이 변한다. 겨울의 정령은 설화(雪花)이지만 봄의 정령은 매화(梅花)다. 두 정령이 계절이 바뀌는 지점에서 만났다. 미(美)를 다투지 않을 수 없다.
눈 속에 핀 매화가 더욱 아름다운 이유는 두 계절을 대표하는 미인이 아름다움을 겨루기 때문이다. 막상막하다. 두 미인의 별칭만 봐도 그렇다. 눈은 옥설(玉屑: 옥가루), 경화(瓊花: 옥꽃), 은속(銀粟 : 은 조), 은사(銀沙: 은모래), 옥사(玉沙: 옥모래), 옥진(玉塵: 옥먼지), 옥접(玉蝶: 옥나비), 옥예(玉蕊: 옥꽃술), 옥서(玉絮: 옥솜) 등으로 불린다.
매화의 별칭은 옥골(玉骨), 빙혼(氷魂: 얼음혼), 청객(淸客: 맑은손님), 한객(寒客: 추운손님), 한영(寒英: 추운꽃), 냉예(冷蕊: 찬꽃), 냉향(冷香: 찬향기), 향설(香雪: 향기눈), 설우(雪友: 눈친구), 옥접(玉蝶: 옥나비), 옥비(玉妃: 옥왕비), 옥면(玉面: 옥얼굴), 옥노(玉奴)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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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겨울과 초봄이라는 한 마당에서 만났으니 둘 다 공통적인 아우라를 지니게 마련이다. 특히 옥, 추위, 꽃, 아름다움이 두 미인의 공통분모다. 시인은 이제 시인이 아니라 미인대회 심사위원으로 모습을 바꾼다.
설화와 매화의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기준은 두 가지로 충분하다. 가슴, 허리, 엉덩이 둘레를 재는 현대의 미녀 표준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설화와 매화에게 모두 불만이 없는 심사 표준은 바로 ‘백(白)’과 ‘향(香)’이다. ‘백(白)’은 겨울 대표 설화에게 유리한 표준이고, ‘향(香)’은 봄 대표 매화에게 유리한 표준이다.
두 가지 ‘미(美)’의 표준에 비춰볼 때 설화와 매화 모두 승자인 동시에 패자다. 하얀 매화가 아무리 희다 해도 눈부신 눈꽃에 미칠 수 없다. 하지만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눈꽃에겐 매화가 발산하는 은은한 향기가 없다. ‘백(白)’의 표준으로는 눈꽃이 승자이고, ‘향(香)’의 표준으로는 매화가 승자다. 빙설에 덮인 매화는 ‘백(白)’과 ‘향(香)’이라는 두 가지 ‘미(美)’의 표준을 모두 충족한다.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고혹적인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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