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동성왕 이름이다. 마모(摩牟)라고도 했다.
삼국사기 권 제26(백제본기 제4) 동성왕본기 : 동성왕(東城王)은 이름은 모대(牟大)<마모(摩牟)라고도 한다>이며 문주왕 동생인 곤지(昆支)의 아들이다. 담력이 남보다 뛰어나고 활을 잘 쏘아 백발백중이었다. 삼근왕이 죽자 왕위에 올랐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24대 동성왕(東城王)은 이름이 모대(牟大)인데 마제(麻帝)라도고 하며 여대(餘大)라고도 한다. 삼근왕(三斤王)의 당제(堂弟)이다. 기미년에 즉위해 22년을 다스렸다.
삼국사기 권 제26(백제본기 제4) 동성왕본기 : 22년(500) 봄에 임류각(臨流閣)을 궁궐 동쪽에 세웠는데 높이가 다섯 장(丈)이었으며, 또 못을 파고 진기한 새를 길렀다. 간언하는 신하[諫官]들이 반대하며 상소(上訴)하였으나 응답을 하지 않았고[不報], 또 간언하는 자가 있을까 하여 궁궐 문을 닫아버렸다. 논한다.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는 이로우며, 바른 말은 귀에 거슬리나 품행에는 이롭다. 이로 말미암아 옛날의 현명한 임금은 자기를 겸허하게 하여 정사를 물었고, 얼굴을 부드럽게 하여 간언을 받아들이면서도 오히려 사람들이 말을 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감히 간쟁할 수 있는 북[敢諫之鼓]을 달고, 비방하는 나무[誹謗之木]를 세우기를 마지 않았다. 지금 모대왕(牟大王)은 간하는 글이 올라와도 살펴보지 않았고, 또 궁궐 문을 닫고서 이를 막았다. 장자(莊子)에 『허물을 보고도 고치지 않고, 간언을 듣고도 더욱 심해지는 것을 사납다고 한다.』라고 하였는데 모대왕이 바로 이에 해당할 것이다.
삼국사기 권 제3(신라본기 제3) 소지마립간 : 15년(493) 봄 3월에 백제 왕 모대(牟大)[동성왕]가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하였으므로, 왕이 이벌찬 비지(比智)의 딸을 그에게 보냈다. 16년(494) 여름 4월에 홍수가 났다. 가을 7월에 장군 실죽 등이 고구려와 살수(薩水)의 들판에서 싸우다가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 견아성(犬牙城)을 지키고 있었는데, 고구려 군사가 그곳을 에워쌌다. 백제 왕 모대(牟大)[동성왕]가 군사 3천 명을 보내 구원하니 포위를 풀었다.
☞동성왕(東城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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