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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그림으로 그려놓으면 간단하기 짝이 없지만 그것을 완성하기까지 싸운 분투는 이가 갈린다.
이를 보며 왜 무령왕릉 부부는 머리를 북쪽이 아닌 남쪽으로 두었을까를 끊임없이 물었다.
저네가 바보가 아닐진대 왜 저랬을까?
20년을 투자한 의문은 최종본 교정 중에 실로 어이없게 풀렸다.
인쇄 들어가기 직전..그 대목을 기어이 쑤셔박았다.
난중에 별도 논문으로 발표할까도 생각지 아니한 건 아니나 거꾸로 가든지 아니면 이에서 허비하고 말자고 생각했다.
(2016.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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