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년 미상. 신라인. 자비왕 때 청빈 혹은 빈한하게 활동했다는 흔적이 보인다.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백결이란 백 군데 누볐다는 뜻이니, 그의 행장을 주목한 별명으로 보인다.
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백결선생 열전 : 백결(百結)선생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낭산(狼山) 아래 살았는데 집이 매우 가난해 옷을 백 번이나 기워 입어 마치 비둘기를 거꾸로 매단 것처럼 너덜너덜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동리(東里)의 백결선생이라 불렀다. 일찍이 영계기(榮啓期)의 사람됨을 사모해 거문고를 가지고 다니면서 무릇 기쁨과 성냄, 슬픔과 즐거움 그리고 마음에 편치 않은 일들을 모두 거문고로 폈다. 어느 해 연말에 이웃 동네에서 곡식을 방아 찧었는데 그의 아내가 절굿공이 소리를 듣고 말하기를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곡식이 있어 방아질을 하는데 우리만이 곡식이 없으니 어떻게 해를 넘길까”라고 했다. 선생이 하늘을 우러러 보며 탄식하며 말했. “대저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명이 있는 것이요, 부귀는 하늘에 달린 것이라! 오는 것은 거절할 수 없고, 가는 것은 따라 잡을 수 없는 것인데 그대는 어찌 마음 상해하시오? 내 그대를 위하여 절구공이 소리를 지어서 위로해 주리다”. 이에 거문고를 뜯어 절굿공이 소리를 내었다. 세상에 전해져 그 이름을 방아타령이라 했다.
삼국사기 권 제32(잡지 제1) 악 : 회악(會樂)과 신열악(辛熱樂)은 유리왕 때 지었고, 돌아악(突阿樂)은 탈해왕 때 지었으며, 지아악(枝兒樂)은 파사왕 때 지었다. 사내악(思內樂)<사내(思內)는 시뇌(詩惱)라고도 한다>은 나해왕 때 지었고, 가무(舞)는 나밀왕(奈密王) 때 지었으며, 우식악(憂息樂)은 눌지왕 때 지었다. 대악(樂)은 자비왕 때 사람 백결선생(百結先生)이 지었으며, 우인(引)은 지대로왕(智大路王) 때 사람 천상욱개자(川上郁皆子)가 만들었다. 미지악(美知樂)은 법흥왕 때 지었고, 도령가(徒領歌)는 진흥왕 때 지었으며, 날현인(捺絃引)은 진평왕 때 사람인 담수(淡水)가 지었고, 사내기물악(思內奇物樂)은 원랑도(原郞徒)가 지었다. 내지(內知)는 일상군(日上郡) 음악이고, 백실(白實)은 압량군(押梁郡) 음악이며, 덕사내(德思內)는 하서군(河西郡) 음악이다. 석남사내(石南思內)는 도동벌군(道同伐郡) 음악이고, 사중(祀中)은 북외군(北郡) 음악이다. 이들은 모두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쁘고 즐거운 까닭으로 지은 것이었다. 그러나 악기의 수효와 가무의 모습은 후세에 전하지 않는다. 다만 고기(古記)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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