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북 장수 침령산성 관련 발굴소식은 이곳에서도 여러 번 전했으니, 그런 기존 소식들은 맨 아래 첨부하는 관련 링크를 참조해주시압.
이런 성과를 토대로 문화재청이 성벽 기준 둘레 497m인 이 산성을 7세기 초 백제가 축조한 후 고려 초기까지 사용했으며, 낙동강 유역의 신라세력과 금강 유역의 백제 세력의 접경지역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였다는 이유를 달라 사적 지정을 했거니와
기존에 소개한 사진들이기는 하지만, 이참에 관련 성과를 일목으로 요연하게 보는 효과도 있어 새삼 소개한다.
‘침령’이라는 명칭은 이 일대 고개 이름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만기요람」, 「대동지지」, 「해동지도」, 「대동여지도」 등의 조선시대 지리지를 보면 ‘침치’, ‘침치고성’, ‘침령’으로 보인다.
2005년 정밀지표조사 이래 2014년부터 2020년까지 5차례 발굴조사를 거쳐 산성이라면 모름지기 있어야 하는 연못과 건물터, 치雉, 문터가 확인됐다. 연못은 총 세 군대 드러났으니 축조기법이 정교하고 규모도 커서 고대 집수시설 축조기술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하는데 축조기술이라 내가 돌겠다.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지형에 만든 침령산성은 남벽과 북벽이 길고, 동벽은 짧고 서벽이 긴 평면 부정형이라 현재는 남벽과 북벽, 동벽 일부구간이 남아있으며, 그 높이는 약 5~10m.
그 이름도 요상한 집수시설이라는 연못에서는 백제계 ‘직구단경호直口短頸壺’, 신라계 작은 단지인 ‘소호小壺’, 고려시대 ‘청자사발’ 조각이 출토된 것을 비롯해 기와, 금속 열쇠, 목간 등 다양한 종류와 시기의 유물이 수습됐다.
이처럼 침령산성은 삼국시대부터 고려 초까지 한반도 고대국가 간의 치열한 각축전이 일어난 역사적 장소이며, 출토유물 등을 통해 정치체의 지배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뛰어난 학술적·역사적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으로 평가된다.
문화재청은 전라북도 장수군과 협력하여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장수 침령산성」을 보다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시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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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침령산성 목간은 도조신道祖神 공헌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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