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김 단장 쓰신 글을 쓰고 덧붙이면, 신라가
진흥왕 때 동해안을 따라 멀리 북상했는데,
저때 신라는 가다가 멈춘 것이 아니라 종족적인 면에서건 지리적인 면에서건 거의 갈 때까지 간 상태였다고 봐도 옳지 않을까 한다.
실제로 신라의 저 동북쪽 경계선은 돌파가 지난하여 그 후 900년이 지난 세종대에야 겨우 돌파하여 두만강 선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윤관의 북벌은 여러가지 이설이 있지만 그 북쪽 경계가 진흥왕의 북벌선 이북으로 못 올라갔으리라 본다.
윤관의 북벌 북상 최대를 두만강 넘어 선춘령으로 본 것은 희대의 천재 세종이 육진을 우리 땅으로 굳히기 위한 명분쌓기용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실제로 윤관 북벌의 북상치는 지금 황초령, 마운령비정도였을 것이라 본다.
윤관도 이때 지리적 경계, 종족적 경계로 저 위로는 못 올라갔을 것이라 보는데, 이 점은 진흥왕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황초령 마운령 이북 지역에는 누가 살고 있었을까?
물론 삼국시대에는 황초령 마운령 이북 지역도 고구려 땅으로 고구려의 통치를 받고 있었지만,
이 지역 주민은 대개 예맥계라기 보다는 숙신계라고 필자는 보는데, 이들이 바로 역사에 나오는 백산말갈, 속말말갈이었으리라 본다.
이렇게 보면 이전에도 썼지만 백산말갈, 속말말갈은 로마 영내에 살던 게르만과 같은 존재였던 셈이 되겠다.
로마 땅에 살아 이에 동화되었더라도 게르만은 종족적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있었던 것 처럼 말갈도 고구려 영내에 살던 사람들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고구려 영내에 살던 백산-속말 말갈이 고구려인과 함께 발해의 구성원도 되고 고려시대에는 동여진으로 계속 바뀌어 간 것이 아닌가.. 짐작해 본다.
*** 편집자注 ***
이 논제와 관련해서는 나 역시 여러 차례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어, 간단히 내 생각을 말해 둔다.
신라 진흥왕 시대 삼국의 영역 지도를 통상 첨부한 저 지도와 같이 그리는데, 내가 기존 압도적인 견해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진흥왕 때 진출하였다가 상실한 영토'라는 저 대목이라.
첫째, 신라가 저 지역으로 치고 올라가서 이미 영역 지배를 관철하기 시작한 시점은 진흥왕시대가 아니라 그보다 적어도 100년,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이었으며
둘째, 저 지역을 신라가 진흥왕 이후에도 상실한 적이 없다는
는 점에서 나는 다른 이들의 견해와는 왕청나게 다르다.
진흥왕이 확보한 함경도 동해안을 이후 신라가 상실했다는 개소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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