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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의 시민종교 교의 애국심을 구상으로 해체하라
1970년을 전후로 전국에 걸쳐 동상이 들어섰으니 그 건립지점은 사람들 내왕이 잦은 곳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리하여 공원이나 광장 같은 데가 집중 건립지점이었거니와,
이 운동은 어떤 세력에 의해 어떤 목적으로 추진되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
서울 남산에는 그런 흔적이 농후했으니 기슭마다 이런 동상이 들어서 남산도서관에는 이곳이 학문의 전당이라 간주했음인지 퇴계 이황과 다산 정약용이 있다.
그 반대편 서울 구심을 바라보는 쪽에는 김유신 동상이 있고 저짝 장충단공원 동국대 쪽에는 사명대사 등이 있다.
광화문광장엔 이순신 동상이 있으며, 기타 조사하면 이런 동상 천지다.
이들 동상을 건립한 주체는 두 곳인데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와 서울신문사가 그것이다.
서울신문사는 국유라, 국가권력이 이 신문사를 앞세워 이 운동을 주도했음을 본다.
저 건립주체가 말하는 '애국선열'이 동상 주체들이었다.
그리하여 애국애족했다는 역사상 인물들이 집중적인 타겟이 되었다.
이 무렵 미술에선 전쟁기록화 제작 역시 활발했거니와 그것을 집약해 모아놓은 전쟁기념관을 가 보라.
박정희 시대는 국민국가 대한민국이 만들어지던 시대였다.
이 국민국가의 절대 성전은 애국심이라, 이 애국심을 발양 체득 체화하지 않고서는 국민이 성립할 수 없고 이 국민이 없이는 근대 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
애국심은 시민종교(civil religeon)를 떠받치는 절대의 교의敎義라, 하지만 모든 종교가 그렇듯 교의는 추상이라 구상으로 해체되어야 했다.
말로써 제아무리 애국심 애국심 해봐야 소용없다.
그것은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하고 손으로 만질 수 있어야 하며 입으로 말을 걸 수 있어야 한다.
동상과 전쟁기록화는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이 무렵 보이스카웃 걸스카웃이 신라 화랑과 결합해 경주엔 그 전당 화랑교육원이 탄생했다.
서구에선 프랑스혁명기에 겪은 일들은 우리는 200년이 지나 뛰어든 것이니 그만큼 절박했고 급했다.
우리가 아는 대한민국은 그 생성시기가 알고보면 반세기 남짓할 뿐이다.
건국시점 논쟁?
적어도 국민국가 기점으로 보면 반세기 전 박정희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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