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개 체계화한 족보가 출현하기 이전에는
아무리 잘 난 집안도 자기 집안을 중심으로 직계를 그리고,
그 직계에서 가지를 친 모양의 소박한 계보만 소지하게 된다.
삼국사기 등에 초기 기록에서
왕실계보를 연상하면 된다.
따라서 직계 계보도 간신히 그린 모양의 계보가 나오게 되는데
예를 들어 태조의 선세 계보를 보면,
목조--익조--도조--환조의 직계계보 위주로 갖게 되니
이건 조선 태조 집안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 어떤 잘나가는 집안도
여말선초에 집안 족보를 그려 보라고 하면
다들 대동소이했다.

그리고 이 직계 계보가 바로 후일의 대동보의 원형이 된다.
이런 직계계보를 벗어나 파보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어느 집안 후손 중에 정말 잘 난 후손들이 자기 집을 중심으로 주변에 수단하여
자기 집을 중심으로 제일 자세하고 주변으로 갈수록 소홀해지는 형태의 족보를 짓는 것이다.
이것이 체계화한 족보의 초기 형태이다.
우리나라 15-16세기 경에 이미 빠른 집안에서는 족보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의 족보가 이런 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 많다.
아무리 수단해도 자기 집 중심의 정보가 자세하고 멀면 소략해 지니
족보에 처가집 사위집 계보까지 몽땅 싣는 시기가 바로 이 시기가 되겠다.
반면에 어떤 집안의 족보를 보면,
방계 정보가 없는 몇 개의 직계 계보가 제각기 위로 쭉 올라가다가
위에서 비로소 하나로 뭉쳐버리는 경우를 보는데,
이는 같은 종족이라고 알고 있던 몇 개 집안이
각자의 직계계보를 들고 만나 하나의 문중으로 합쳐 버린 경우이다.
대개 고려시대의 계보 중에 이런 경우가 많다.
같은 종족임을 서로 알고 있는 여러 개의 직계 계보가 위에서 만나 하나의 종족 계보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물론 방계가 없는 개별 직계계보에도 방계 종족들은 있었겠지만,
이런 이들은 모두 초기 족보에서 누락되게 된다.
16세기 이후 종족들이 불어나는 과정에서
우리도 동성동본임을 알고 있지만 어느 대에서 갈려나왔는지 알지 못하는 이들이
족보에 직계계보를 들고 합보를 요청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 중에는 이런 이유로 합류하는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그와는 달리 이를 헛점으로 보고 족보에 슬쩍 끼어드는 경우도 생겨나게 된다.
우리나라 족보가 16세기 이후 팽창해 가는 과정을 보면 무척 재미있다.
물론 족보를 꾸리는 쪽에서도 바보가 아닌지라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으면 끝까지 짧은 글이라도 남겨 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의심의 시선도 그 다음 대동보가 나올 때쯤이면
이미 60-70년이 지난지라 그 이전의 의심스러운 기록은 다 지워지고
어엿한 집안의 동본 종족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21세기 우리의 각 집안 대동보는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그 의심스러웠던 구석은
21세기의 대동보에는 남아 있지 않고
19, 18, 17세기 이렇게 옛날 족보 구보를 따라 올라가면
그 안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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