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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아버지들이여, 제때 죽어주자!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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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도' 한 장면...아버지가 제때 안 죽으면 아들이 죽을 수밖에


고구려 장수왕(長壽王)은 이름대로 백수를 했다. 그의 아들로 세자는 조다(助多). 아버지가 무려 왕위에만 79년간 있다 죽었을 때 조다는 죽고 없었다. 조다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니 그가 문자명왕이다. 아버지가 하도 왕 노릇 오래하는 바람에 먼저 죽었으니 이름 그대로 쪼다가 되어 버렸다. 

그보단 못하지만 조선 세종 역시 장장 32년이나 왕위에 있었다. 문종은 세종의 장자로 아버지가 재위 3년째인 1421년에 세자로 책봉되었다. 이때만 해도 아버지 세종은 모든 실권은 아버지 이방원에게 그대로 두어야 했다. 그러니 세종이 왕위에 재위한 기간과 문종이 세자로 있은 기간은 같다. 내가 놀랍기만 한 것은 이 긴 기간 문종이 내리 죽죽 세자로 있었다는 점이다. 

세자나 태자 생활은 왕보다 더 힘들다. 언제건 틈만 나면 끌어내리려는 시도가 일어나기에 어정쩡한 넘버 투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 너무 똑똑하면 똑똑해서 아비를 잡아 먹을 놈이라 해서 쫓겨나고, 등신 같으면 등신같다 해서 쫓겨나고, 방탕하면 방탕하다 해서 쫓겨난다. 아주 가깝게는 그의 형 양녕이 그렇지 아니했는가? 이 천하의 망나니는 방탕하다 해서 아비한테 쫓겨났으니 말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보면, 장장 37년을 재위한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은 처음에 동륜(銅輪)을 태자로 삼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너무 왕노릇 많이 하자, 기다리기 지쳐 그랬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아버지보다 먼저 죽었다. 태자 자리는 그의 동생 금륜(金輪)에게로 가니, 이가 훗날 신하들한테 쫓겨난 진지왕이다. 

근자 《화랑세기》가 공개되었다. 보니, 진흥에게는 태자가 세 명이었다. 조강지처 숙명한테서 둔 아들 정숙(貞肅)을 처음에 태자를 삼았지만, 어미가 행실이 곱지 못해, 혹은 열정이 넘쳐 그랬는지 모르지만 딴 남자한테 홀딱 빠져 스스로 왕비 자리를 버리자, 애꿎은 정숙 또한 태자 자리에서 쫓겨나고 만다. 진흥은 후실로 들인 사도(思道)에게서 동륜과 금륜을 두었던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동륜이 왜 죽었는지가 없지만, 《화랑세기》는 뜻밖에도 동륜이 아버지 후궁이랑 밤마다 놀다가 하루는 그 후궁 건물을 지키는 사냥개 종류한테 물려죽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개죽음이었다. 이로써 보건대도 아버지는 제때 죽어주거나, 혹은 일찍 자리를 내놔야 한다. 소위 말하는 세대교체다. 

조선 임금으로 가장 오랜 53년인가를 재위한 영조 역시 중간에 세자 바꿔치기를 해야 했다. 하지만 이 아비는 불행하기 짝이 없어, 자기 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굶어죽여야 했으니, 막상 죽인 다음 아들은 없고 덜렁 손자 하나만 남았으니, 그가 여든 몇살까지 장수한 이유는 오로지 의지 때문이었다고 나는 본다. 내가 오래 살아 저 손자놈이 성년되는 모습을 봐야 한다는 그 일념 하나로 그리 오래살았다고 본다. 

문종은 병약하다 하지만, 내 보기엔 이는 장기간 스트레스에 따른 병약이다. 아버지 죽기만 30년을 기다렸으니, 오죽이나 돌아버렸겠는가? 이 땅의 아비들아. 제때에 죽어줘야 그 자신도 봉변을 당하지 않고 아들을 죽였다는 말을 듣지 않는다. 

나는 아비가 죽자 너무 통곡해 문종이 건강을 해쳤다는 말 믿지 않는다. 왜 지금에야 돌아가셨소 하는 원망으로 건강을 망쳤다고 본다. 

일찍 죽자, 아니다 제때 죽자 아버지들아. 오래 생명만 부지해 부자관계 파탄나는 꼴 정 보기 싫으면 그 권한은 제때 자식들한테 물려주어야 한다. 하긴 이 말도 내가 아비이니 할 수 있지, 아비 아녔으면, 호로자식 후레자식 소리 듣기 딱 좋았을 성 싶다. 

각중에 산소로 아버지를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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