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나는 울산 약사동제방 유적을 소개했으니, 아래 글이 그것이라.
나한테 굴욕을 안겨준 약사동 제방 유적 발굴
https://historylibrary.net/11650
6~7세기 신라의 수리水利체계를 생생히 증언하는 이 약사동 제방은 그 중대성에 견주어 가장 중요한 하나를 확인할 수 없었으니, 댐이요 보이며 저수지인 저 제방에서 가장 중요한 수문水門 확인에 실패했다.
저 거대한 제방에 어찌 물을 조절하는 수문이 없었겠는가? 다만 실로 아쉽게도 그것을 확인하지 못했으니, 없었을 리는 없고 있었는데 그 부분이 깨져나간 것이다.
내가 짐작하는 수문 자리가 바로 이곳이다. 이곳에 수문이 있었다!!! 하지만 깨먹어 버렸다.
보고서를 봐야겠지만 이 대목을 아마 일찌감치 자연 유실되어 버린 것으로 치부했겠지만, 이곳이 제방인 줄 모르고 무턱대고 공사판 벌이다가 다 밀어버렸음이 분명하다. 저 꼴 봐라!!!
아예 밑둥까지 쏵 깎아버렸으니, 이른바 부엽층이라고 하는 부분도 날아가도 아예 바닥까지 내려갔다. 저기에 수문이 있었다! 아니라면 손에 장을 지진다!
그렇다면 그 수문은 어떤 모양으로 생겨먹었을까? 그 가장 중대한 미싱 링크 missing link 를 채울 방법은 없는가?
왜 없는가? 고민하지 않아서 방법을 못찾았을 뿐이지 저걸 날려먹었다 해도 우리는 그것이 어떤 모양새였는지 알 수가 있다.
도르래 원리를 이용한 영월 정양산성 수문水門 개폐시설
https://historylibrary.net/6321
영월 정양산성 성벽과 수문이다. 보다시피 개폐 시설을 설치했고, 그 개폐시설은 도르레를 이용했다.
저렇게 신라는 수문을 설치해서 넘칠 때는 저걸 열어 물을 뺐고, 부족할 때는 막아 채운 것이다.
저 미싱 링크 자리에다가 정양산성 수문을 갖다 놓으면 그것이 바로 신라 수리시설이었다.
'역사문화 이모저모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성환의 이집트 이야기] 투탕카멘과 하워드 카터(8) 끝없는 갈등과 쓸쓸한 말년 (0) | 2022.12.15 |
---|---|
[유성환의 이집트 이야기] 투탕카멘과 하워드 카터(7) 본격화하는 발굴 (0) | 2022.12.15 |
[유성환의 이집트 이야기] 투탕카멘과 하워드 카터(6) 파라오의 저주? (0) | 2022.12.08 |
[유성환의 이집트 이야기] 투탕카멘과 하워드 카터(5) 카터의 발굴팀 – 당대 최고의 전문가 집단 (0) | 2022.12.06 |
1962년, 백옥빈 씨가 브라질행 치차렌카 호에 몸을 실은 까닭은? (0) | 2022.12.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