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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가 경유한 길 물론 추정로도 있다.
소위 "고구려 사신" 그림이 있었다는 궁전이 위치한 길목이다.
엄청나게 멀어 보인다.
그런데 사실 이 언저리는 인도로 들어가는 이들이 무시로 지나가는 길이었다는 말이다.
고구려 사신이 어떤 외교적 이유로 저길 나타나 저 지역의 국가들과 모종의 외교적 딜을 했다면 저기까지 갈 필요가 있었을까 싶지만,
인도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가고 있었다고 한다면,
저기는 그냥 지나갈수 있는 길목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인도 하면 떠오르는 현장의 천축국 행로도 하나 붙인다.
신라.
서기 6세기에 이미 저 길을 따라 인도로 들어간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우리는 혜초만 있다고 생각하지만,
삼국 통일 이전에 이미 신라 승려들이 중국을 거쳐
거기에 만족 못하고 인도까지 들어간 사람들이 꽤 있었다는 말이다.
저 궁전에 나타난 한국인을 중국을 견제하는 정치군사적 목적으로 본다면 굉장히 신기한 일이 되겠지만
문화적 욕구로 인도로 들어가는 길목에 들린 것이라면 하나도 이상할 것 없다는 뜻이다.
신라인 승려 중에는 인도를 두 번이나 간 사람도 있었다.
한 번 갔다가 중국으로 돌아온 후 또 간다.
신라에서 원효가 나와 동아시아 불교 세계를 진동시킨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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