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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Who in Ancient Korea

전지왕(腆支王)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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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제18대 왕이다. 태어난 해는 알려지지 않았고 420년 몰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재위기간은 405∼420년이지만, 외국계 기록과는 차이가 있다. 직지(直支) 혹은 진지(眞支)라고도 한다. 본명은 영(映)이다. 아신왕(阿莘王) 맏아들이요 어머니는 해씨 출신 팔수부인(八須夫人)이다. 


삼국사기 권 제25(백제본기 제3) 아신왕본기 : 3년(394) 봄 2월에 맏아들 전지(腆支)를 태자로 삼고, 크게 사면했다. 서제(庶弟) 홍(洪)을 내신좌평으로 삼았다. 6년(397) 여름 5월에 왕이 왜국(倭國)과 우호를 맺고 태자 전지(支)를 볼모로 보냈다.


삼국사기 권 제25(백제본기 제3) 전지왕본기 : 전지왕(腆支王)<직지(直支)라고도 한다>은 양서(梁書)에는 이름을 영(映)이라고 했다. 아신(阿莘)의 맏아들이다. 아신이 재위 제3년에 태자로 삼았고, 6년에 왜국에 볼모로 보냈다. 14년에 왕이 죽자 왕의 둘째 동생 훈해(訓解)가 정사를 대리하면서[攝政] 태자의 환국을 기다렸는데, 막내 동생 혈례(蝶禮)가 훈해를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전지가 왜국에서 부음(訃音)을 듣고 소리내어 울며 귀국하기를 청하니 왜왕이 병사 100명으로써 호위해 보냈다. [전지가] 국경에 이르자 한성 사람 해충(解忠)이 와서 고하였다. “대왕이 죽자 왕의 동생 혈례가 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원컨대 태자는 경솔히 들어가지 마십시오.” 전지는 왜인(倭人)을 머물러 두어 자기를 호위하게 하고, 바다의 섬에 의거하여 기다렸더니, 나라 사람들이 혈례를 죽이고 전지를 맞아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왕비는 팔수부인(八須夫人)이니 아들 구이신(久=辛)을 낳았다. 2년(406) 봄 정월에 왕이 동명묘(東明廟)에 배알하고 남쪽 제단[南壇]에서 천지에 제사지냈으며, 크게 사면했다. 2월에 사신을 진(晉)나라에 보내 조공했다. 가을 9월에 해충(解忠)을 달솔(達率)로 삼고 한성(漢城)의 조(租) 1천 섬을 주었다. 3년(407) 봄 2월에 서제(庶弟) 여신(餘信)을 내신좌평으로 삼았고, 해수(解須)를 내법좌평(內法佐平)으로 삼았고, 해구(解丘)를 병관좌평으로 삼았는데 모두 왕의 친척이었다. 4년(408) 봄 정월에 여신(餘信)을 상좌평(上佐平)으로 삼고 군무와 정사를 맡겼다. 상좌평의 직은 이로부터 시작되었으니 지금[고려]의 총재(宰)와 같았다. 5년(409)에 왜국이 사신을 파견하여 야명주(夜明珠)를 보내니 왕이 후한 예로 대접하였다. 11년(415) 여름 5월 갑신에 살별[彗星]이 나타났다. 12년(416)에 동진(東晉)의 안제(安帝)가 사신을 보내 왕을 책명(冊命)하여 사지절(使持節) 도독백제제군사(都督百濟諸軍事) 진동장군(鎭東將軍) 백제왕(百濟王)으로 삼았다. 13년(417) 봄 정월 초하루 갑술에 일식이 있었다. 여름 4월에 가물어서 백성들이 굶주렸다. 가을 7월에 동부(東部)와 북부(北部) 두 부(部)의 사람으로 나이 15세 이상을 징발하여 사구성(沙口城)을 쌓았는데 병관좌평 해구(解丘)로 하여금 공사를 감독하게 하였다. 14년(418) 여름에 사신을 왜국에 파견하여 흰 면포 열 필(匹)을 보냈다. 15년(419) 봄 정월 무술에 살별[星]이 태미(太微)에 나타났다. 겨울 11월 초하루 정해에 일식이 있었다. 16년(420) 봄 3월에 왕이 죽었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18대 전지왕(腆支王)은 진지왕(眞支王)이라고도 한다. 이름이 영(映)이다. 아신(阿莘)의 아들이다. 을사년에 즉위해 15년을 다스렸다.


삼국사기 권 제25(백제본기 제3) 구이신왕본기 즉위년 : 구이신왕(久尒辛王)은 전지왕 맏아들이다. 전지왕이 죽자 왕위에 올랐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19대 구이신왕(久爾辛王)은 전지(腆支)의 아들이다. 경신년에 즉위해 7년을 다스렸다.


삼국사기 권 제25(백제본기 제3) 비유왕본기 즉위년 : 비유왕(毗有王)은 구이신왕 맏아들이다.<전지왕 서자(庶子)라고도 하는데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 용모가 아름답고 말재주가 있어 사람들이 떠받들고 존중히 여겼다. 구이신왕이 죽자 왕위에 올랐다.


삼국사기 권 제25(백제본기 제3) 비유왕본기 : 4년(430) 여름 4월에 송(宋)나라 문황제(文皇帝)는 왕이 다시 직공(職貢)을 닦았기 때문에 사신을 보내 선왕(先王) 영(映)의 작호로 책봉해 주었다.<전지왕 12년(416)에 동진이 책명(冊命)하여 사지절使持節) 도독백제제군사(都督百濟諸軍事) 진동장군(鎭東將軍) 백제왕(百濟王)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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