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신문을 읽다가>
1. 1903년 1월 22일, <황성신문皇城新聞>에는 이런 고백告白(이라고 쓰고 광고라고 읽는)이 실린다. 고백이라고 했으면 뭔가 달달한 내용이겠거니 할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 전혀 남과 여의 사랑하고는 상관없다. 그럼 무슨 내용이냐!
⊙本社에셔 有志者 幾人이 資本을 鳩合하야 我韓自古로 野史雜誌와 奇文異書와 國朝故事文獻을 收集하야 訂校發刊하야 國內에 廣布하겠사오니 勿論遠近하고 故事文獻에 可攷할 書冊이 有압거던 本社로 來議하시면 爲先重價를 不惜하고 其書冊을 購買도 하려니와 將次 刊布할 터이오니 四方有志僉君子는 照亮來議하심을 伏望
左開書冊
羅麗以來史記等書如三國遺事高麗圖經之類
國朝以來故事文獻如燃藜紀述靑野謾輯之類
東國地誌如輿地誌東京志八域志之類
先輩政治農工攷據等書如星湖僿說磻溪隨錄課農書之類
皇城新聞社 告白
(주: 아래아는 변환이 안되므로 'ㅏ'로 씀)
2. 한자가 한 자 이상이므로 무슨 내용인지 요약하면, <황성신문> 본사에서 몇몇 사람이 자본을 모아 우리나라 옛날 책을 모으고 교정해 발간하려 하매, 뭔가 집에 귀한 책이 있으면 비싸게 주고 살 테니 들고 오라는 뜻이다.
3. 그러면 이 사람들은 무슨 책을 구해서 인쇄하려 했는가? <삼국유사三國遺事>, <고려도경高麗圖經>, <연려실기술燃藜室紀述>, <청야만집靑野謾輯>, <여지지輿地誌>, <동경지東京志>, <팔역지(八域志, 택리지의 이명異名인듯)>, <성호사설星湖僿說>, <반계수록磻溪隨錄>, <과농서(課農書, 과농소초課農小抄인지?)> 따위 종류의 "신라와 고려 이래의 역사서, 조선초 이래의 국고문헌, 우리나라 지리지, 선배들의 정치서와 농서, 공서, 공구서" 등등이었다. 지금이야 역사를 좀 안다는 분이라면 읽지는 못했어도 이름쯤은 들어본 책들이다.
4. 이 광고는 한 석 달 내리 <황성신문>에 실린다. 비슷한 시기, 황성신문사에서 낸 책들이 더러 전하는데 <회사법會社法>이나 <정치원론政治原論> 같은 것부터 <만국사물기원역사萬國事物紀原歷史>나 <대한강역고大韓疆域考>, <애급근세사埃及近世史>, 심지어는 <소채재배전서蔬菜裁培全書>라고 채소 기르는 법 적은 책도 있다(그 저자가 위암韋庵이다). 그런데 정작 위에 언급한 고전들은 인쇄하지 못하고 만 모양이다. 이런 책들이 근대 활판으로 인쇄되려면 몇 년 뒤, 일본인 주도의 조선고서간행회나 최남선의 조선광문회를 기다려야했다(예외적으로 <삼국유사>는 1904년에 도쿄에서 나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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