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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로왕 시대 어느 백제 귀인의 딸인 듯한데, 일본 천황에게 채녀로 받쳐졌다가 천황이 아닌 다른 남자와 정분을 통했다고 해서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죽은 때는 458년 7月27日~8月24日로 추정된다.
日本書紀 雄略天皇 二年 七月 : 웅략천황雄略天皇이 마침 불렀는데 이시카와노타테(石河楯. 석하순. いしかわのたて)과 정을 통하는 중이었다. 천황이 크게 노하여 오토모노무라야(大伴室屋大連. 대반실옥대련. おおとものむろや)에게 詔하여 쿠메베(来目部. 래목부. くめべ)를 보내 이들 부부의 사지(四肢)를 나무에 묶어 桟敷에 놓고는 불로 태워 죽이게 했다.
日本書紀 雄略天皇 二年 七月 : 백제신찬百済新撰에 말했다. 기사년(己巳年)에 개로왕(蓋鹵王)이 즉위했다. 천황이 아레나코(阿礼奴跪. あれなこ)를 파견해 여랑(女郎. 에하시토. えはしと)을 바치라고 하니 모니부인(慕尼夫人. 무니하시카시. むにはしかし) 딸을 분장시켜 적계여랑(適稽女郎. 차쿠케이에하시. ちゃくけいえはし)이라 부르고는 천황에게 받쳤다.
日本書紀 雄略天皇 五年 四月 : 백제(百済)의 가수리군(加須利君. 개로왕蓋鹵王이다-原注)이 사람들에게서 지진원池津媛이 불태워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의논해 말하기를 “옛날에 여자를 헌상해 채녀(釆女)로 삼았다. 하지만 무례하게도 우리나라 이름을 실추했다. 앞으로는 여자를 헌상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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