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걸 똥오줌을 못 가리니, 왕가 왕릉 시스템을 모르니 헛소리 찍찍 해댔으니
웅진 도읍기 백제 왕가 공동묘지를 등관登冠이라 부른 것과 똑같은 발상이라
그곳을 대묘大墓라 했거니와
곧 발해 왕가 누가 죽어 진릉珍陵으로 갔다는 말은
그것이 특정한 발해 왕 무덤이라는 뜻이 아니라, 왕들을 포함해 그에 묻힐 수 있는 왕족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다 묻히는 묘역 전체 이름을 말하는 것이다.
곧 동작동 국립묘지나 알링턴 국립묘지나 같다.
발해 제3대 문왕 딸인 정혜공주貞惠公主가 서기 777년 40세에 사망하자 780년에 “진릉의 서원에 매장하였다(陪葬於珍陵之西原)”고 했거니와
저 시스템을 모르니 헛소리 짱짱이라 이는 묘역이라 진릉이라는 이곳에 왕가 인물들이 묻힌 것이다.

이 왕가 사람 중에 발해왕이 포함되는가?
이 문제는 복잡하고, 나아가 왕가 공동묘지라 해서 꼭 하나만 있으란 법은 없지만 암튼 왕가 공동묘지인 것만은 하늘이 두쪽 나도 변함 없다.
이번에 중국이 공개한 효의황후孝懿皇后(맞나? 암튼) 묘지墓誌를 보건대 珍陵臺禮也라 했으니, 이를 어찌 볼 것인가가 문제가 되겠지만, 그이가 묻힌 데를 珍陵의 臺로 봐야 할 성 싶다.
진릉 중에서도 臺에 해당하는 지점에 묻으니 그것이 예법에 맞는다 뭐 이런 뜻 아니겠는가 싶다.
이 경우 臺가 어떤 의미인지 아리까리하다. 주축 혹은 중심 정도인가?
이는 陪葬於珍陵之西原라는 저 정혜공주 묘지명과 비교할 때 더욱 그렇다.
정혜공주는 그렇다면 진릉에 묻힌 것인가? 이게 좀 애매하다.
진릉이라는 구역에 포함되는 서쪽 지점인지, 아니면 그 진릉이라는 구역 바운더리를 벗어나기는 하나, 그 외곽 서쪽 지점인지 불확실하다.
나는 내심 전자가 옳다고 본다.
저 무덤 배치도를 봐도 그렇다.
이는 배장陪葬이라는 말 때문이다.
이 배장은 말 그대로 딸린 무덤이라, 그 오야붕 되는 사람 무덤이 능원 중심에 있고 그를 둘러싸고 그 신하들이 묻히는 무덤이 배장묘다.
이 정혜공주는 시집 가지 않았나?
그렇다면 남편 능원에 묻혀야지 왜 지 아버지 무덤에 따라왔던가?
혹 시집 가서 산 곳이 근처라 그랬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암튼 저 진릉은 무령왕릉에서 확인한 대묘大墓다.
이 대묘를 헛소리를 찍찍해댔다. 곧 무령왕 부부가 묻힌 그 무덤이라고 헛소리 찍찍해댔다.
하지만 대묘는 그런 뜻이 아니라 특정한 가문 종족 공동묘지라는 뜻이다.
진릉은 발해 왕가 공동묘지 이름이다.
아마 중국학계는 문왕릉으로 보지 않을까 싶다.
이것저것 고려 안하고 직감에서 한 말이니 너무 괘념치 말았음 싶다.
난 이쪽 발해는 신경도 안 썼다.
계속 신경 안쓸까 하다가 잠깐 어깨 너머 커닝해 본다.
'역사문화 이모저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여 읍내 사찰 추정지 흔적과 관련해 보탠다 by 심상육 (1) | 2025.08.31 |
---|---|
나치는 왜 우루루 아르헨티나로 몰려갔을까? (2) | 2025.08.30 |
덩빨! 군인의 출세 조건 (1) | 2025.08.29 |
미워하며 산다는 것, 저주를 퍼붓는 사람 (1) | 2025.08.29 |
인간은 언제쯤 어디에서 말을 길들였을까? (2) | 2025.08.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