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가리아 남서부에서 발굴 작업을 진행하던 고고학자들이 고대 세계 판도를 바꾼 중요한 전투 중 하나인 피드나 전투Battle of Pydna 이후 임시로 세운 로마 군사 야영지의 강력한 증거를 발견했다.
이 야영지는 스트루마 고속도로Struma Motorway 인근 폴레니차Polenitsa 마을에서 진행된 긴급 발굴 작업 중 발견되었다.
불가리아 과학 아카데미 산하 국립 고고학 연구소 시르마 알렉산드로바Sirma Alexandrova 박사가 이끄는 발굴팀은 동전, 화살촉, 철제 텐트 말뚝 iron tent pegs, 심지어 신발끈 부속품shoelace fittings까지 다양한 유물을 발굴했다.
앞서 같은 지역에서 진행된 조사에서는 지붕 기와, 강돌과 점토로 쌓아 올린 벽 잔해, 횃불torchlight 흔적이 발견된 바 있다.
이러한 발견을 바탕으로 알렉산드로바 박사는 이 유적이 기원전 168년, 로마가 마케도니아의 페르세우스 왕King Perseus of Macedon을 상대로 승리한 직후에 세운 단기간 로마 야영지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이 야영지는 인근 도시인 헤라클레아 신티카Heraclea Sintica를 장악하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헤라클레아 신티카는 중부 스트루마 계곡Middle Struma valley에 위치한 전략적으로 중요한 도시였다.
화폐학적 증거는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발굴된 동전 중에는 기원전 187년에서 168년 사이 암피폴리스Amphipolis 유래 동전이 포함된다.
또한, 같은 시기 도기 조각들이 산단스카 비스트리차Sandanska Bistrica 강변의 침수되지 않은 단구에 위치한 약 300평 규모 유적 전역에서 발견되었다.
특히, 화재나 전투로 인한 파괴 흔적이 없어, 야영지는 짧은 기간 사용 후 평화롭게 버려졌음을 시사한다.
역사적 자료에 따르면, 헤라클레아 신티카 출신 2,000명에서 3,000명 전사는 페르세우스를 도왔지만, 페르세우스는 로마 장군 루키우스 아에밀리우스 파울루스Lucius Aemilius Paulus에게 패배했다.
전투 후, 파울루스는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Publius Cornelius Scipio Nasica를 파견해 이 지역 잠재적 저항 세력을 진압하도록 지시했으며, 도망치는 마케도니아 왕을 돕지 못하도록 헤라클레아 신티카를 파괴하라는 명령도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폴레니차Polenitsa 인근에서 새롭게 발견된 로마군 진영은 이러한 기록들을 뒷받침하며, 발칸 반도 지배권을 공고히 하려는 로마군의 신속한 군사적 움직임을 시사한다.
류드밀 바갈린스키Lyudmil Vagalinski 교수와 알렉산드로바Alexandrova 박사가 이끄는 헤라클레아 신티카 유적 발굴에서도 이 시기에 발생한 파괴 흔적이 이미 발견되었다.
도시가 완전히 파괴되었는지, 아니면 로마에 굴복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고고학자들은 추가 연구를 통해 피드나 전투에서 로마가 승리한 후 혼란스러운 시기에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고대 도시 중심지 중 하나였던 헤라클레아 신티카의 운명을 밝히고자 한다.
출처: Archaeology Bulgari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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