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북서부 시안 인근에서 발굴 작업을 진행하던 고고학자들이 서주西周Western Zhou 시대 무덤을 발견했는데, 이 유적은 고대인들의 전쟁, 기억, 그리고 평화 철학에 대한 태도를 새롭게 조명한다.
이 유적은 서주 시대(기원전 1046년~771년)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 시기는 흔히 정치적 변화, 영토 확장, 그리고 때로는 내전으로 점철된 시기로 여겨진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이 여러 무덤에서 발견한 유물들은 더욱 조용하고 사색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도기와 다른 일상 용품들 사이에서, 시신과 함께 묻히기 전에 의도적으로 부러뜨린 청동 단검과 나이프들daggers and knives들이 발견되었다.[같은 칼이라 해도 대거와 나이프를 구분했음을 본다.]
처음에는 이러한 손상이 전쟁이나 약탈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오히려 그 반대라고 본다.
이 무기들은 장례 의식 일환으로 매장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구부러뜨리거나 부러뜨린 것으로 본다.
죽은 자를 내세의 전투를 위해 무장시키는 대신 매장자들은 안식, 나아가 폭력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을지도 모른다.
발굴 작업에 참여한 고고학자 위펑페이Yu Pengfei는 이렇게 변형된 유물들이 고인을 평화로운 사후 세계로 인도하기 위한 제물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즉, 무기를 부수는 행위는 전쟁 도구를 전쟁의 종식을 알리는 표식으로 바꾸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전례가 없지는 않다.
고대 중국 문헌에는 "전쟁을 멈추는 것이 진정한 용기다"라는 개념이 언급되는데, 이는 서주 시대 이후 수 세기 후에 편찬되었지만 그 이전의 전통을 계승한 역사서인 좌전Zuozhuan과 관련이 있다. [춘추좌씨전을 말한다.]
좌전은 정치적 책략과 군사 작전에 대한 기록으로 유명하지만, 통치자의 도덕적 책임과 전쟁의 한계에 대해서도 고찰한다.
매장지에는 13개 무덤과 재 구덩이ash pits[흔히 회갱灰坑이라 표현한다], 그리고 주변에 도랑ditch이나 해자moat 흔적이 남아 있었다.
무덤 배치는 불규칙적이며 뚜렷한 계획이 보이지 않는데, 이는 시대의 변화하는 장례 풍습이나 매장된 사람들의 신분 차이를 시사할 수 있다

다른 유물로는 삼족 항아리tripod jars, 사발bowls , 저장용 항아리storage pots 등의 도기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음식과 음료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이 장례 절차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사적 배경과 유물이 함축하는 의미 사이의 대조다.
서주 시대에는 "천명天命Mandate of Heaven"을 비롯한 주요 정치 사상이 발전했고, 이는 권력의 흥망성쇠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이 시대는 갈등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맥락에서 매장 전에 무기를 무력화한 행위는 당시의 현실에 대한 보다 개인적이거나 철학적인 반응을 암시한다.
이러한 유물들은 좀처럼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러진 칼날들은 전쟁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세상에서도 갈등을 지속하는 것보다 종식시키는 데 가치를 두는 다른 종류의 유산이 존재할 여지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Sources : SCMP
***
저처럼 무덤에 넣어주는 물건을 일부러 훼손하는 일을 흔히 고고학에서는 훼기毁器라 하거니와, 그 의미에 대해서는 우리는 자주, 그리고 상세히 논했다.
저런 훼기가 동사아시아 문화권 만이 아니라 광범위하게 나타나는데, 그 기본 맥락은 부러뜨림은 실용 기능의 상실을 의미하기니와, 왜 이리 하는지는 이미 순자가 정리한 적이 있다.
그에 의하면 삶과 죽음은 길이 다르기에 그 다름을 표식하고자 그리한다고 했다.
물론 모든 멀쩡한 기물을 다 그리하는 것은 아니다. 개중에서도 깨뜨릴 만한 것들, 칼 같은 무기나 꼬다리 혹은 받침 같은 부러뜨리기 쉬운 것들을 대개 골라서 그리한다.
저 서주시대 칼을 부르뜨린 일도 그리 봐야지 평화 운운은 동의할 수 없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보도를 인용했으니, 그 원문을 봐도 크게 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를 살피면 문제의 무덤은 2022년 섬서성에서 발견되었으며 조사성과는 3월 중순에 공포됐다.
공동묘지는 서주 왕조 수도 서안 외곽에 위치한다.
상 왕조를 무너뜨린 서주 왕조는 초대 군주 무왕武王이 기원전 1043년 무렵 사망한 후, 그의 형제들이 권력을 놓고 다투면서 내분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이후 권력 통합 과정에서 중국은 여러 제후국으로 분열됐다.
순자가 말하는 명기明器와 훼기毁器
순자가 말하는 명기明器와 훼기毁器
순자筍子 《예론禮論》 喪禮者,以生者飾死者也,大象其生以送其死也。故事死如生,事亡如存,終始一也。始卒,沐浴、鬠體、飯唅,象生執也。不沐則濡櫛三律而止,不浴則濡巾三式而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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