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EWS & THESIS

새벽에 느닷없이 뒤진 장수 춘송리 고분군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3. 6.
반응형

 

저 전북 장수 춘송리 고분군이라는 데는 나로서는 생소할 수밖에 없으니, 무엇보다 그 등장이 내가 현직을 떠나고 나서 느닷없이 출현한 유산인 까닭이라 

삼국시대 유산으로서는 아주 신생아라, 그것이 출현하고 발굴조사가 이뤄진 과정을 간단히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보다시피 2002년 지표조사를 통해 존재가 알려지기는 했다가 2023년에야 계우 군산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가 시굴조사를 함으로써 비로소 속내를 드러냈고 그 이듬해에 본격 발굴조사가 이뤄졌거니와

다행히 무리를 지어 존재한다고 보고된 대략 15기에 이르는 삼국시대 무덤 중에서도 춘송리 고분군 4호분이라 이름한 무덤이 도굴 피해가 없는 곳으로 발굴조사 결과 드러나고, 이를 통해 신라 색채 완연한 유물이 드러남으로써 신라시대 공동묘지임이 만천하게 폭로되기에 이르렀다. 
 

보다시피 침령산성 기슭에 춘송리 고분군이 위치한다.

 
주변 분포 양상을 보면 이 공동묘지는 결국 그 동쪽 인접 지점에 위치하는 침령산성이라는 삼국시대 산성과 일맥으로 상통하는 것으로 드러났으니,

무엇보다 출토 유물이 상통해 결국 침령산성 운영 관리에 연관하는 특정 세력 집단 구성원이 묻힌 곳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결국 침령산성과 춘송리고분군은 세트인 셈인데, 예서 관건은 저 산성을 운영하고, 저기에 묻힌 사람들이 생전 어디에 터잡고 생활했을까 하는데 가겠거니와 그 험준한 산 기슭 어딘가에서 떵떵 거리고 살았을 것이다. 
 

 
이것이 시발굴조사 결과 드러난 춘송리 고분군 현황 배치도다. 

등빨로 보면 1호분이라 이름한 데가 오야붕 무덤이 아닐까 하는데, 이곳은 아마 다 날아갔거나 도굴이 극심한 상태 아닐까 하며, 실제 4호분도 전반하는 무덤 봉분 크기를 보아 유별나게 크다 할 수는 없을 듯하거니와 미도굴이라 그런 대로 원상태를 유지한 상태로 속내를 드러냈다. 
 

 
전형하는 석실분이라, 돌을 쌓아서 무덤방을 맹글고 그 안에다가 시체를 넣은 관을 안치했을 것이로대, 관은 다 썩어 없어졌다. 

무덤방은 보다시피 남북으로 길쭉한 형태이며, 신라 무덤이 대체로 후장厚葬이라 해서 껴묻거리를 잔뜩 넣어주는 양태임에 견주어 유물이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닌 박장薄葬 형태로 드러났다. 

시신 머리를 어디로 두었느냐도 관건이겠지만, 저런 남북 장축 무덤방은 간혹 예외가 있지마는 머리는 북쪽으로 둔다. 왜? 북쪽이 죽음의 땅이며 북두칠성이 있는 데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조사단에서는 어찌 봤는지 모르겠다. 

신라 문화권에서 무덤 장축, 특히 머리 방향을 기준으로 적석목곽분 시대와 그 이후 시대는 획기를 이루는데, 적석목곽분 이전 시대가 동서 장축이요, 머리는 동쪽을 두는 데 견주어,

6세기 초중반 석실분이 도입하면서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어 남북 장축으로 변모하며, 머리는 북쪽을 향하게 된다. 

따라서 저 무덤은 볼짝 없다. 때려죽어도 6세기 초중반 이후에 등장해야 한다! 토기 양식? 웃기는 소리 할 필요도 없다. 
 

 
이것이 봉분을 깎아 조사하는 와중 한 장면이다.
 

 
무덤방이 노출된 상황이다. 왼쪽이 북쪽이다. 
 

 
무덤방을 다양한 각도에서 살핀 모습들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위쪽이 북쪽이다. 
 

 

그 출토 도기들이라, 맨 앞쪽 중간에 계란 모양 이상한 물품이 보인다. 

 
이를 조사단에서는 훈壎이라 해서 악기 일종으로 보았는데 글쎄다 악기가 맞는지 나는 모르겠다!
 

 
새벽에 느닷없이 내가 춘송리 고분군 자료를 뒤척인 이유는 이 때문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