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이 700년 만에 세습 귀족 의원을 상원에서 축출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타전됐거니와, 귀족제를 제대로 경험하지 아니한 우리(한데 이것이 제도화한 적이 한국사에서는 있다. 식민지시대 중추원이 그랬지만, 해방하면서 말짱 꽝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는 생소하기만 하지만 이해가 그다지 어려운 것도 아니다.
이를 위해 저 의회 귀족제가 어떤 식으로 운용되는지를 봐야 한다.
영국 상원은 하원에 견주어 허당이긴 하지만, 아무리 허당이라도 각종 유무언하는 특혜와 권리가 없을 수는 없다.
암튼 노동당 정부가 장악한 영국 의회Parliament가 선출직이 아닌 상원House of Lords에서 세습 귀족 의원들 hereditary aristocrats을 제외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저 오래도록 이어진 귀족제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고 하거니와
문제는 저 세습hereditary이라는 말이 국민이 선택하지 아니한unelected 대표라는 데 있다 하겠다.
국민이 선택하지 아니한 사람이 특정한 타이틀을 혈통에 따라 자동으로 이어받는 일을 용서할 수 없으니, 이걸 없애겠다 해서 이참에 아주 없애버린 것이다.
영국 하원[House of Commonso f the United Kingdom]이 통과시킨 이 법안은 귀족 작위aristocratic titles와 함께 선출이라는 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고 혈통에 따라 의석을 자동으로 세습받은[inherited seats] 공작dukes, 백작earls, 자작들viscounts을 의회에서 쪼까낸다는 내용이 골자다.
영국 상원House of Lords은 아무리 허당이라 해도 선출직 의원들로 구성되는 하원[elected House of Commons]에서 통과된 법안을 심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영국 의회 민주주의parliamentary democracy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저 상원과 하원이라는 말[번역어]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하지만 이건 훗날 탐구 과제로 남기기로 한다. 소위 상원과 하원은 상하 관계가 아님에도 어떤 멍청한 놈이 저 말을 저리 옮겼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한데 저 영국의 경우 상원과 하원은 그 명칭에서 보아 상하 관계처럼 꾸며 놓기는 했다.
상원, 곧 House of Lords는 글자 그대로는 영주 혹은 주인님들의 집구석인 반면, 하원, 곧 House of Commons는 노태우가 말한 보통 사람들의 대표자 모임이다.
그렇다고 어찌 둘 사이에 상하 관계가 성립하겠는가?
한데 영국 상원 쪽수는 800명에 달한다. 이런 의회 기구로 이보다 많은 쪽수는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밖에 없다.
중국이야 본래 인구 쪽수가 많아 그렇다 하겠지만, 인구라 해 봐야 대한민국이랑 비슷한 영국에서 무슨 저리 많은 귀족이?
한데 상원을 구성하는 귀족noblemen도 세습이냐, 아니면 1대에 한해서 그런 작위를 보유하느냐로 갈라진다.
세습hereditary은 글자 그대로 금수저 아버지를 둔 자식[이것도 여성은 거의 없었다.]이 자동빵으로 그 작위를 이어받는 제도다.
한데 이렇게 혈통으로만 묶어놓으면 그 사회가 변화가 없다.
이른바 자수성가형이 있을 수 있다. 이들을 어찌 처리하느냐에 따른 고민이 없을 수가 없다.
아비는 못났으나 내가 잘나서 출세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법적 절차에 따라 어떤 요건을 충족하면 그 사람에 한해서 귀족 의원이 된다.
이른바 개천에서 난 용이다!
지금 상원 의원은 저런 세습 귀족은 다 쫓겨나서 몇 남지도 않았고 나머지는 퇴직 정치인이나 시민 지도자, 저명인사가 주축을 이룬다.
현재 상원 의원 10명 중 약 1명만 세습 귀족인데 이것도 못 참겠다 해서 이번에 쪼까내기로 한 것이다.
세습 귀족을 그 사람 한 대에 한해서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유지한다 해서 "life peers"라 하고, 그 사람만 아니라 그 아들까지도 자동으로 승계하는 의원을 "hereditary peers" 혹은 "hereditaries"라 부르기도 한다.
언뜻 종신 귀족이나 세습 귀족이 무슨 차이냐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지만, 둘 사이에는 그 작위가 아들로 자동빵으로 넘어가느냐 아니냐에 따라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한다.
신라 고려 조선시대를 흔히 귀족사회니 하는 식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웃기는 소리다.
한국사에서 작위가 자동으로 세습된 경우는 없다.
따라서 한국사에서 귀족이라 부르는 존재는 존재한 적도 없지만, 엄밀히는 종신 귀족에 지나지 않는다. 이 종신조차도 각종 핑계로 수시로 처단되긴 했지만 말이다.
한 대에 한 해서 작위가 세습되는 이런 운용 시스템은 실은 인류학에서 광범위하게 관찰되며, 놀랍게도 근자 공개된 화랑세기를 보면 왕비를 배출하는 양대 모계 혈통 대원신통과 진골정통이 딱 그렇다.
이 대원신통과 진골정통은 어머니에서 딸, 딸에서 손녀로만 이어지는 반면, 남자는 딱 한 대에 한해서만 그 어머니 혈통을 이어받는다.
저 종신 귀족, 세습 귀족은 한국 무가巫家에서 무당을 배출하는 양대 통로, 곧 세습무와 강신무에 딱 해당한다.
물론 딱 백퍼 대응관계를 이룬다 하기는 힘들겠지만 세습무란 (주로 여성을 통해) 무당이라는 타이틀 혹은 직업이 어머니 딸 손녀로 이어지는 시스템을 말하며, 강신무는 말 그대로 본래 무당이 아니었는데 어느날 어디선가 벼락 한 방 얻어맞고 느닷없이 무당이 된 경우를 말한다.
약발은 당연히 강신무가 쎄다. 예수 행적을 보면 놀라운데, 실은 사막에서 한 방 얻어맞고 깨달음을 얻은 강신무의 전형이다.
물론 저런 강신무도 세습무의 시조가 될 수 있다.
세습 귀족이건 종신 귀족이건, 나는 더욱 중요한 것이 종신 귀족이라 보거니와, 그에서 변혁의 바람이 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도 저것도 다 싫다 해서 프랑스혁명처럼 아예 다 쓸어버리기도 하며, 미국혁명은 출발 자체가 그 어떤 귀족 특혜를 없애버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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