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와 사직은 귀신을 봉안하는 국가 기간 시설이라는 점에서, 또 서로에 대한 쌍을 이룬다는 점에서 동시기에 갖춰야 하는 국가 근간 시설이며
실제 실록을 봐도 조선이 건국하고 이어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면서 동시기에 건설에 착수하고 동시기에 완공식을 알렸으니 두 시스템이 근간에서 같아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는 실제 그 배치도를 보면 아주 명확한데 특히 건물 중심축을 보면 그렇다.
아래가 그것을 하나로 통합한 그림이다.

종묘가 23도, 사직단이 22도라 약간 차이가 지지만 저 정도 오차는 실상 같다고 봐야지 않겠는가?
종묘의 경우 정전 말고도 그 부속하는 제2 제당인 영년전 또한 이 구도를 따랐음을 본다.
놀랍지 아니한가?
우리는 저 이야기를 하면서도 지금껏 오직 종묘만을 이야기했으니 그것도 수준은 첫째 풍수타령, 둘째 모르겠다 이 두 가지로 수렴한다.
우린 우리 상식으로 설명 안 되는 현장은 모조리 풍수를 갖다대는 경향이 있는데, 이 역시 한 치 예외 없다.
한국고고학이 지들이 모르는 것만 나오면 이형異形이라 하듯이, 고건축에서는 지들 상식 통념과 배치되기만 하면 풍수타령이었다.
고건축? 내가 고고학만 두들겨 패서 그렇지 저게 학문이야?
맨 전면 몇 칸 측면 몇 칸 타령 주심포 타령, 또 할 일 없으면 맨 자연과의 조화 타령 일삼는 저 딴 게 어찌 학문이란 말인가?
지금 동서남북을 기준으로 엄격한 측량이 도입되기 전 동아시아에서는 남북 중심축이라 해도, 대략 5도 내지 8~9도가 틀어진다.
나는 이 원인이 그 시대 절대하는 방향타인 북극성 때문이라 보는데, 나아가 진북 자북 개념도 있고, 아무튼 그리해서 발생했다 보거니와, 이 차이가 크다 할 수는 없다.
한데 종묘와 사직은 유독 저에서 벗어나 저네가 남북 개념을 모른 것도 아닌데 저런 식으로 22~23도까지 삐딱선을 탔으니, 어찌 저것이 풍수 때문이겠으며, 어찌 저것이 현지 사정 때문이겠으며, 어찌 저것이 우연이겠는가?
결론은 하나다.
일부러 그랬다.
목적성이 있어 저리했다.
우리는 이 목적성을 찾아야 한다.
그에 앞서 저것이 얼마나 이례냐 하면 저 사직 종묘와 동시기에, 또 같은 설계자가 건축한 거대 건설 프로젝트가 있으니 이에서도 저런 이례異例를 확인해야 한다.
우리의 다음 발길은 경복궁으로 향한다. 그리고 짬이 나면 창덕궁도 갈 것이다.
[삐딱선을 탄 종묘] (2) 사직단도 삐딱선을 탔다!
https://historylibrary.net/entry/jongmyo-3
[삐딱선을 탄 종묘] (2) 사직단도 삐딱선을 탔다!
말은 그리 했지만 짚이는 게 있었다. 직감이라 하는 요물인데, 이런 내 직감이 틀린 적은 거의 없다. "그래? 종묘가 그렇다면 사직도 그럴 텐데? 왜 똑같은 귀신집이잖아?"난 내가 생각해도 이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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