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문화 이모저모

극심한 근친혼, 허울만 족외혼인 신라 고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11. 23.
반응형
신라 왕가에 왕비를 공급한 양대 혈통. 조문국과 왜국 왕녀, 그리고 그에서 난 딸들이 대대로 왕비를 배출했다.

 
비단 고려 뿐이랴? 신라에 대해서는 그 근엄한 김부식 공의 흉노랑 비교하는 역사 평설도 삼국사기에 보이거니와, 정작 그렇게 비난한 고려인 김부식이지만, 고려라 해서 다를 것도 없었으니 

건국 과정에서 이런저런 세력들과 손을 잡아야 한 창업주 왕건 시대는 그에서 태어난 형제자매가 엄마가 다르면, 법적 제도적 관습법적으로 근친혼이 장려 혹은 고정화했으니, 이후 이런 사정이 죽죽 이어진다. 

여러 차례 논한 적 있지만, 극친혼은 시공간을 달리하는 측면이 있고, 그것을 용인하는 사회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아니하는 사회도 있어 유동하지만, 족외혼만큼은 인류 역사를 관통하고, 한국사 역시 시대를 통괄할 적에 엄격한 족외혼 시스템을 고수했다. 

그런 까닭에 족외혼은 비단 한국사만이 아니라 인류사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 근자에는 DNA 시퀀싱에 기초한 인류학 연구성과랑도 맞아 떨어진다. 

족외혼은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집단으로 간주하는[실제 생물학적으로 그런가는 치지도외해야 한다. 생물학적 토대보다는 관념이 더 중요하다.] 씨족 밖에서 배필을 구하는 제도이니, 한때 한국사회를 장악한 처가 살이[주로 신혼에 해당하지만]도 그 유습이라 보아 대과가 없다. 

유의할 점은 족외혼 반대편은 족내혼이지 근친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근친혼인 사회를 족내혼과 혼동하는 경향이 있지만 둘은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 

더 간단히 말해 그 사회가 근친혼이 일반적이거나 다수 보인다 해서 그 사회가 족내혼 사회는 아니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족외혼과 근친혼은 자주 충돌한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하겠다.

이를 피하고자 신라가 채택한 시스템이 놀랍기 짝이 없는데, 이건 실은 기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통해서는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가 화랑세기가 출현함으로써 비로소 베일을 벗었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신라왕실은 왕비는 철저히 씨족 밖에서 구했다.

한데 그 실제를 들여다 보면 씨족 밖에 아니라 씨족 안인 극심한 근친혼 사회였다. 

어머니 혹은 아버지 중 하나만 달라도 배필로 삼는 이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족외혼을 구현했는가?

화랑세기는 물론 그 뿌리는 신라 사회 밖에서 구했다.

이에서 화랑세기가 무대로 삼는 신라 상고기와 중대기 왕비를 배출하는 혈통을 인통姻統이라 하면서, 양대 혈통을 거론했으니, 하나가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에 기반을 둔 조문국 왕가 혈통에서 비롯한 진골정통眞骨正統과, 미사흔 왜국 인질 생활에서 비롯하는 왜국倭國 왕실에서 비롯하는 대원신통大元神統이 그것이었다. 
 

신라 왕가에 왕비를 공급한 진골정통 기원과 전개. 철저히 모계로만 전승했다.

 
저 두 왕비족 혈통은 그 남상격인 여인들이야 족외혼을 구현하고자 할 때 명실이 딱 상부하거니와 문제는 저 두 혈통에서 비롯되는 여성들만 그 이후에는 왕비[물론 정실을 말한다.] 로 선발한다는 헌법 규정이었다. 

이 두 혈통에서 생산되는 여인들만 왕비가 된다? 그 나물에 그 밥, 우리가 요즘 흔히 말하는 콩가루 집안이 탄생한다. 

한데 신라는 바보가 아니었다.

배필은 씨족 밖에서 구한다는 족외혼을 구현하고자 기발하기 짝이 없는 시스템을 강제화하게 되는데, 이 왕비 혈통, 곧 인통은 오직 모계로만 따진다는 그것이다. 

오직 모계로만 따지니,이 혈통 여인들은 한 번 대원신통은 영원한 대원신통, 한 번 진골정통은 영원이 진골정통이 될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할머니 엄마를 필두로 나를 거쳐 내 딸, 내 손녀는 영원이 진골정통 아니면 대원신통이 되어, 이런 모계로만 연결되는 여인들은 영원히 조문국 왕녀, 혹은 왜국 왕녀가 되어, 신라 왕실과 대대로 혼인하는 길을 연 것이다. 

이 시스템이 고려가 건국되고 나서 약간은 옷을 갈아입지만, 근간에서는 변하지 않는 시스템으로 정착한다.

이른바 종모성從母姓이라는 희한한 제도가 그것이라 

예컨대 아버지 성씨는 왕건에서 비롯되니 아버지 성을 따른다면 그에서 난 아들이건 딸은 모조리 왕씨가 되거니와, 이 시스템에서는 지들끼리 결코 혼인을 할 수 없다.

왜?

족내혼을 금지하니깐!

이런 모순에 봉착한 저들은 아들들은 아버지 성, 곧 왕씨를 따르지만, 딸들은 어머니 성, 곧 그 어머니가 그 성씨를 물려받은 외할아버지 성씨를 모칭하게 만들게 된다. 

그래서 황보씨 집안에서 취한 왕비 혹은 후궁한테서 난 딸들은 왕씨라 칭하지 않고 모조리 황보씨를 칭함으로써 고려 왕가의 혈족 집단인 왕씨 집안과는 다른 씨족 집단 소속이 되어, 비로소 족외혼을 해야 하는 사회 기준을 충족하게 되는 것이다. 
 

태조 왕건인가 하는 드라마에 나오는 왕건의 여인들. 하나같이 절세미인이다. 부러운 양반

 
딸들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 성을 따른다는 이 종모성 제도가 그 내실을 따져보면 완전히 대원신통과 진골정통 판박이라는 사실이 놀랍지 아니한가?

쏘리! 이 이야기를 결코 주체로 삼지 않을 작정이었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배경으로써만 잠깐 다룰 이야기였지만 그 배경 설명이 너무 길어 일단 이것으로써 한 챕터를 삼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고자 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