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속 이 문제 심각성을 말했지만, 제대로 음미되지는 않는 듯해서 재방한다.
조선 왕조 창업주 이성계는 1335년 생이다.
그런 그가 조선왕조를 개창한 1392년엔 이미 58세에 도달해 산송장이나 다름 없었다.
물론 이후 그는 천수보다 더한 생을 누리다가 1408년에 향년 74세로 눈을 감기는 했지만, 다름 아닌 친아들한테 쿠테타로 밀려나 1398년 9월 5일에 강제 퇴임하는데, 이때도 이미 64세에 달했다.
당시 평균 수명이 얼마인지 알 수는 없지만 30세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것도 의료 수택 불균형에 따른 차이가 적지 않아서 권력 있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평균수명이 길었다.
길다 해도 인생 70 고래희古來希가 저 무렵 조선초기라 해서 다를 것도 없었다.
늙은 창업주는 두고두고 정국 불안 요소로 작동하게 된다.
왕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마당에 그 후계구도를 둘러싼 속내 혹은 계산들이 오죽 복잡하겠는가?
이 피비린내나는 전쟁에서 이방원이 결국은 이겼으나, 그것이 진행되는 와중에 정국은 살얼음판을 걷는 듯했다.
실록은 시종해서 이성계가 건국을 주도한 것처럼 기술했지만 천만에.
58세 노인네가 무슨 쿠데타를 하고 혁명을 주도한단 말인가?
그는 얹혀서 어느날 느닷없이 왕으로 옹립됐을 뿐이다.
조선개국 공신 목록을 보면 배극렴, 조준, 정도전, 남은, 김사형이 1등 공신에 책봉되는데 저 중에 이성계보다 나이 많은 이는 배극렴裵克廉(1325년 생)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거의 대부분 1340년대 이후 출생자들이라, 이성계와 나이 차이가 적지 않았다.
이성계가 얼마나 나이가 많은가 하면 우리가 고려 왕조 멸망 당시 상노인이라 여기는 목은 이색(1328)보다 불과 7살 어렸을 뿐이며, 개국으로 가는 길에 처단한 정몽주(1338년생)보다 나이가 많았다.
이성계보다는 조민수한테 목이 달아난 최영은 1316년생이라 이성계보다는 19살이 많았다.
58세에 즉위한 개창주...신하들과 아들들은 언제나 이성계가 죽어줄까 기다리기만 했다.
특히 건장한 아들들이 문제였으니, 이성계한테 비극은 너무 늙은 나이에 산송장 상태로 얹혀서 느닷없이 왕이 되는 바람에 이미 왕이 되어 새로운 왕조를 개창할 때 건장한 아들들이 너무 많았고 이에 더해 손자도 바글바글하다는 사실이었다.
적당한 시기에 죽어줘야 하는데 또 문제는 이성계가 쉬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최영도 그렇고 이성계도 그렇고, 멀리 김유신도 그런데 왜 야전으로 몸을 때운 장군들이 왜 저리 오래사는지 모르겠다.
나는 결코 역성혁명을 이성계가 주도했다 보지 않는다.
환갑을 앞둔 송장이 무슨 쿠데타란 말인가?
이성계는 얹혔다. 특히 야심 많은 정도전과 남은한테 엎혀서 억지로 끌려가서 왕이 되었다.
그러니 왕 할 맛이 나겠는가?
이성계는 인상과는 달리, 또 젊은시절에는 어떠했는지 추단이 어려우나, 늙어서는 우유부단하기만 했다.
오죽하면 아들한테 쫓겨나고서 갈 데 없어 회암사 들어가서 중이 되었겠는가?
이성계는 그런 사람이다.
흔히 그 아들 중에서는 이방원과 이방원이 처단한 다른 두 형인가를 과단성 있니 뭐니 떠들지만, 이성계 핏줄 중에서 제일로 과단성이 있고, 제일로 호전하는 사람이 세종 이도다!
그는 할아버지가 갖추지 못한 불 같은 기질의 소유자였으며, 그 불같은 기질은 아버지 이방원을 몇 십 배나 능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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