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헨조다로는 내가 중고교 시절 세계사를 접할 때는 너무나 친숙한 이름이라, 나중에 개사기로 드러나기는 했지만 이른바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라 해서 인더스 문명을 대표하는 유적 혹은 도시로 각인했거니와
어쩌다 그런 모헨조다로를 요새 부쩍 다시 접할 기회가 있으니, 유감스럽게도 아직 나는 저 현장을 직접 목도하지는 못했으니 그곳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간헐로 전할 뿐이기는 하나, 그 친숙함이 어디 가겠는가?
그러다가 인더스 문명에는 저보다 더 유명하거나, 혹은 저에 버금하는 데로 지금은 인도 영역에 들어가 있는 하라파라는 고대 도시가 있어,
이 도시가 워낙 유명해서 저 인더스 문명, 이것도 더욱 정확히는 인더스 계곡 문명이라 하더라만, 하라파 문명이라고도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인연도 있다.
저 모헨조다로는 그 영문 표기가 Mohenjo Daro라, 더욱 정확히는 모헨조 다로라 해야겠지만, 어떻거나 무슨 상관이랴.
각설하고 문제는 인더스 문명이 과연 언제쯤 시작되었는가 문제가 되겠거니와, 단 하나 분명한 점은 이른바 기존 사기극 4대 문명론에 의하건대, 수메르 문명보다는 약간 늦고, 이집트 문명과는 엇비슷한듯 하지만, 황하 문명보다는 확실히 빠르다.
최근 파키스탄 소재 저 모헨조다로Mohenjo Daro가 발굴조사에 다시 들어갔거니와, 이번 조사 핵심은 이 도시 시초를 찾는 일이었으니, 문제는 그 시작점을 무엇으로 삼느냐 아니겠는가?
이에서 조사단이 착목한 데가 성벽이라, 이것을 찾아서 그 심초부가 언제쯤 만들어졌느냐를 통해 그 일단을 엿볼 수 있겠거니와, 조사 결과 두께 7미터에 달하는 성벽을 발견했으니,
개중 가장 오래된 부분은 하라파 문명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이 성벽은 1950년대에 모티머 휠러Mortimer Wheeler라는 고고학도가 이미 발굴조사를 한 적 있다.
하지만 이제 시대도 바뀌었으니, 당시까지만 해도 탄소연대 측정과 같은 과학적 방법이 거의 적용되지 않았거나 있었다 해도 그 장족한 기술 발전에 새로움을 입힐 시절이라
이번 조사 결과 성벽 기저부에서 출토한 각종 시료에 대한 연대 측정 자료를 보면 성벽이 들어선 시점은 기원전 2800년에서 2600년 사이라고 한댄다.
이로써 모헨조다로 도시 역사는 기존에 생각한 것보다 수 세기 앞선 것으로 보게 되었다고 하는데...
대략 이 무렵이라면 메소포타미아보다는 조금 늦고, 이집트와는 비등비등한 것이 아닌가 하며, 저 멀리 남미 대륙 카랄수페 문명과도 비슷할 것으로 본다.
이번 발굴 조사는 파키스탄 신드 주 고고학 및 유물 총국Directorate General of Archaeology and Antiquities, Sindh과 신드 탐험 모험 협회Sindh Exploration and Adventure Society 공동 조사로 진행되었다.
파키스탄 고고학자 아스마 이브라힘Asma Ibrahim, 알리 라샤리Ali Lashari, 그리고 미국 수석 고고학자 조너선 마크 케노이어Jonathan Mark Kenoyer가 이끌었다.
이런 조사에 반드시 구미 문화권 저명 고고학도가 이름을 올리게 되는데, 그래야 관련 연구성과를 저명 잡지에 기고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까닭이다.
파키스탄은 미국과 관계가 좋은 것으로 아는데, 미국 손을 잡았다고 봐야지 않겠는가?
문제는 성벽이 들어선 시점과 이곳에 인간이 거주한 시점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상식으로 봐도 뭔가 기반 시설 혹은 조건이 있고 나서야 성벽이 들어서지 않겠는가? 당연히 정착촌 형성은 성벽과 적어도 같거나 보통은 빠르다고 봐야 한다.
실제 발굴팀에 따르면, 첫 번째 성벽 아래에서 인간 거주 흔적이 드러났으니 코트 디지안 토기Kot Dijian pottery라 해서 이 지역 선사시대 전형하는 도기가 발견되었거니와, 이는 초기 하라파 문명에 사람이 거주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고 봐야 한다.
간단히 말해, 이는 모헨조다로는 고고학자들이 생각한 것보다 더 일찍 존재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시화가 기원전 2800년 무렵으로 당장 당겨지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아니다는 답이 우세한 쪽이다. 물론 이것도 지금 그렇다는 뜻이지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보면 안 된다.
저 도시 지하 어디에 무엇이 더 있을지 누가 장담하겠는가?
인도 역사연구위원회 소속 고고학자이자 연구원인 디샤 알루왈리아Disha Ahluwalia가 이번 발굴을 어찌 봐야 하는지 발언을 한 것이 있다.
그의 기고문 전문을 본다.
참 잘 썼다. 물론 담당 기자가 손을 봤겠지만 말이다....
모헨조다로는 이집트 도시들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최근 발굴 조사의 진실은?
최근 모헨조다로에서 발견된 증거는 이 유적의 도시화 시기가 기원전 3300년경이라는 것을 시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유적은 훨씬 더 이른, 도시화 이전 단계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디샤 알루왈리아Disha Ahluwalia
2026년 4월 13일 오전 10시 36분 (인도 표준시)
파키스탄 모헨조다로에서 최근 진행된 발굴 조사에서 두께 7미터에 달하는 벽의 증거가 발견되었으며, 이 벽의 가장 오래된 부분은 하라파 문명의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1950년대 모티머 휠러가 발굴한 이 성벽 유적은 기원전 2800년에서 2600년 사이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써 모헨조다로의 역사는 기존에 생각한 것보다 수 세기 앞당겨졌다.
이번 발굴은 신드 주 고고학 및 유물 총국과 신드 탐험 및 모험 협회 공동 조사로 진행되었으며, 파키스탄 고고학자 아스마 이브라힘, 알리 라샤리, 그리고 미국 수석 고고학자 조너선 마크 케노이어가 이끌었다.
발굴팀에 따르면, 첫 번째 성벽 아래에서 코트 디지안 토기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초기 하라파 문명 거주 흔적을 보여준다.
간단히 말해, 모헨조다로는 기존 고고학자들이 생각한 것보다 더 오래전에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것이 모헨조다로의 도시화 시기를 기원전 2800년으로 앞당긴다는 것을 의미할까?
답은 '아니오'다.
최근의 발견은 매우 흥미롭지만, 오늘날 파키스탄이나 인도 지역에서 하라파 문명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최근 언론 보도, 특히 모헨조다로의 도시화 기원이 기원전 33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제목을 오해한 것 같다.
기원전 3300년은 하라파Harappa, 라키가리Rakhigarhi, 돌라비라Dholavira와 같은 여러 하라파 문명 유적에서 발견되는 초기 하라파 시대 또는 도시 이전 단계를 가리키는 것이지, 기원전 3천년 대에 모헨조다로에 도시가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언론 매체는 모헨조다로가 이집트 도시들보다 더 오래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잘못된 사실이다.
그렇다면 모헨조다로에서 새롭게 발견된 증거는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하나씩 살펴보자.
지역화 시대Regionalisation Era
하라파 문명은 잘 계획된 도시, 훌륭한 배수 및 위생 시스템, 그리고 기념비적인 건축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하라파 유적 내 수백 곳 유적을 100년 넘게 발굴한 결과, 도시화는 기원전 2600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즉, 하라파 문명의 도시화 시기는 기원전 2600년에서 1900년 사이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도시는 규모가 커지고 직각으로 교차하는 거리들이 격자형으로 계획되었다.
또한, 수리 시스템, 빗물 활용, 그리고 전문화한 기술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교역망이 강화하고 해상 활동이 간헐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러한 발전은 단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는 지역화 시대, 즉 식량 생산 시대부터 시작하여 수 세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된 긴 과정의 결과다.
고고학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지역화 시대Regionalisation Era'(짐 섀퍼Jim Shaffer, 1992)는 기원전 5000년경부터 2600년경까지의 시기를 가리킨다(케노이어Kenoyer, 1991).
이 시기는 초기 하라파 시대라고도 불리며, 각 지역 문화가 유물, 특히 도기를 통해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한 시기로, 이러한 유물들은 집단적으로 발견된다.
예를 들어, 하라파에서는 케노이어Kenoyer가 라비 강Ravi River 유역 이름을 딴 라비 시대Ravi phase, 하크라 강 유역 초기 하라파 문화인 하크라 시대Hakra phase, 그리고 대표 유지인 코트디지 이름을 딴 코트디지 시대Kot-Diji phase를 발견했다.
그리고 소트-시스왈 단계Soth-Siswal phase는 가가르 분지Ghaggar basin의 소티와 시스왈Sothi and Siswal 유적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이는 유사한 지역적 물질문화와 관련된 초기 하라파 유적이 밀집했음을 나타낸다.
초기 하라파 문명, 즉 지역화 단계regionalisation phase는 도시화urbanisation의 전조다.
이 시기에는 무역이 시작되었지만 속도는 느렸고, 정착지는 계획적이었지만 단순했으며, 수리 시설은 존재했지만 지금처럼 화려하지는 않았다.
경제는 주로 농업에 기반을 두고 있었지만, 다른 산업 분야에서도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하라파 유적 내에서 초기 하라파 유적이 도시나 마을보다 훨씬 더 많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라키가리에서는 초기 하라파 단계의 공간적 범위가 도시 지역 두 배에 달한다.
이곳의 지역화 시대는 광범위하고 풍부한 독특한 정착 패턴을 보여준다.
실제로 이 유적의 RGR 6 봉분Mound은 초기 하라파 시대 유물로만 구성된다.
하라파에서는 케노이어가 지역화 시대를 라비(Ravi)와 코트 디지안(Kot Dijian) 단계로 구분했다.
마찬가지로 최근 모헨조다로 발굴에서도 코트 디지안 토기 또는 코트 디지안 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언급되었는데, 이는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초기 하라파 시대가 이번 발굴 시즌에 확인되었음을 의미한다.
방어벽 유적과 함께 다수 코트 디지안 토기 조각이 발견되었다.
코트 디지Kot Diji
코트 디지 유적은 파키스탄 신드 주에 위치하며, 1955년부터 1957년까지 FA 칸Khan이 발굴했다.
이 유적은 종종 인더스 문명 이전/하라파 전통 또는 초기 하라파 문화로 불리며, 기원전 3300년에서 2800년 사이 것으로 추정한다.
고대 정착지는 성채 지역과 하부 도시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가옥은 진흙 벽돌로 만들었고, 성채는 암반 위에 세운 보루가 있는 방어벽으로 요새화했다.
성채는 돌과 진흙 벽돌로 지었다.
이 유적은 하라파 문명의 성숙기 또는 통합 시대Integration Era가 시작될 때까지 계속 사람이 거주했다.
통합 시대Integration Era로의 전환
기원전 2600년경부터 기원전 1900년경까지, 일부 정착지는 하라파 문명 특징을 통합한 도시로 발전했다.
하라파, 모헨조다로, 돌라비라, 라키가리와 같은 도시들은 무역과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
경제 변화와 함께 사회는 여러 변화를 겪었고, 이러한 변화는 800년 동안 지속되었다.
모헨조다로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유적들은 바로 이 시기에 속한다.
대형 목욕탕, 성채, 주거 단지와 같은 벽돌 구조물들은 도시 또는 하라파 시대 특징을 보여준다.
오늘날 이 시기에 속하는 유적은 수천 곳에 달한다.
모든 정착지가 도시는 아니지만, 일부는 마을, 항구, 공예 마을로 발전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최근 모헨조다로에서 발견된 증거들은 도시 또는 도시화 시기가 기원전 3300년경이라는 것을 시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유적은 훨씬 더 이른 문화 단계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성벽은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건축 양상을 보여준다.
성벽 가장 아랫부분은 지하수면 아래에 위치하여 초기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노출된 성벽은 구조 단계의 중간층에 해당하며, 과학적 분석을 통해 기원전 2800년에서 2600년 사이의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이 발굴을 통해 진흙 벽돌로 된 성벽 후기 단계는 기원전 2600년에 시작되어 기원전 2200년까지 유지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이와 유사한 양상은 파키스탄의 하라파[인도 아닌가? 국경이 걸쳤나?], 인도의 쿠날Kunal과 비라나Bhirrana 등 다른 유적에서도 관찰되었으며, 이들 유적에서도 초기 하라파 유적이 지역적으로 출토되었다.
하리아나 Haryana 주에 위치한 쿠날은 코트 디지와 같은 시기에 속한다.
또한 바나왈리Banawali를 비롯한 여러 유적 하층부에서는 지역화 시대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최근 모헨조다로에서 발견된 결과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모헨조다로는 독특하거나 전례 없는 사례라기보다는 도시 이전 시대 특징을 보여주는 유적 목록에 가장 최근에 추가된 곳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디샤 알루왈리아는 고고학자이자 인도 역사연구위원회(ICHR) 연구이다. 트위터 계정은 @ahluwaliadisha.
본 글의 견해는 개인적인 의견이다.
(Edited by Prasanna Bachchha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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