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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오례의

주자가례의 비극: 왜 우리 조상들은 미라가 되었나 (10): 에필로그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약속한 대로 조선시대 회곽묘 관련 선행 연구를 소개한다. 아래 연구에 필자의 글은 많은 영향을 받았다. 먼저 조선초기 상장의례의 변천은 정종수 선생의 중앙대 대학원 박사논문 "조선초기상장의례연구"에 자세하다. 이 논문은 회곽묘만 다룬 논문은 아니지만 조선 전기 주자가례를 도입하는 과정의 논란과 변천에 대해 서술하였다. 고려시대의 석실묘가 조선시대의 회곽묘로 변천해 가는 과정도 자세히 다루었다. 정종수 선생 다음으로 회곽묘의 변천과 관련하여 꼭 읽어봐야 할 책으로 김우림 선생의 "조선시대 사대부 무덤 이야기 (민속원)"를 권한다. 이 책이 나오기 전 김우림 선생의 글은 회곽묘의 변천을 이해하기 위해 꼭 읽어야 할 글이었는데 이 책에 이전 주장이 알기 쉽게..
주자가례의 비극: 왜 우리 조상들은 미라가 되었나 (9)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우리나라 조선시대 회곽묘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모두 동의하는 부분의 하나는 회곽묘 구조가 처음 조선 땅에 출현했을 때와 나중 시간이 많이 흘렀을 때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한백문화재연구원 방유리 선생의 "조선시대 회격묘 출토 유물의 수습과 보존" (야외고고학 제 7호)이나 김우림 선생의 단행본 "조선시대 사대부 무덤 이야기" (민속원)을 보면 이 부분이 비교적 자세하다. 김우림 선생 주장에 따르면 조선전기에는 "국조오례의"에 기술된 방식대로 회곽묘를 만들었는데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소위 "국조오례의" 방식의 회곽묘 제작 기법. 방유리 선생의 논문에서 전재하였다. 초기 방식의 회곽묘 제작 방식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묘광을 파고 그 위에 목곽-..
주자가례의 비극: 왜 우리 조상들은 미라가 되었나 (8)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불교식 상장례를 타파하고 주자가 정리한 주자가례를 조선의 공식적인 매장 방식으로 채택했다고는 하지만 조선 바닥 그 누구도 회곽묘를 실제로 만드는 방법을 목격한 사람은 없었다는 이야기를 이미 했다. 회곽묘에 사용한 재료. 위에 보이는 재료 중에 석회·모래·황토를 삼물三物이라 부르는데 이것으로 섞어 관 주위에 다져두면 굳어 회곽이 된다. 마사토는 무덤 주변의 생토층을 상징한다. 회곽묘는 지배계층의 대 불교 "사상투쟁" 과정 중에 채택된 묘제이므로 회곽묘는 조선 계급사회의 가장 높은 지위의 사람부터 아래로 그 유행이 흘러 내려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처음 회곽묘는 "국조오례의"의 흉례 "치장" 편에도 기술되어 있을 정도였으니까 국초에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