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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품석

김춘추의 여인들(3) 고타소 이 고타소(古陀炤)는 앞서 여러 번 다루었고, 그것이 등장하는 맥락이나 사건은 이곳 내 블로그에서 '고타소' 혹은 그의 남편 '품석'으로 검색하면 되거니와, 혹 그것들이 모두 필요하신 분들은 참고바란다. 고타소란 이름은 내 조사가 철저한지 아닌지는 자신이 없거니와, 일단 내 추산대로라면 《삼국사기》 권 제41 열전 제1 김유신上에 보이거니와, 그것이 등장하는 맥락은 다음과 같다. 선덕대왕 11년 임인(642)에 백제가 대량주(大梁州)를 격파..
룡석(龍石) 선덕왕 11년(642) 백제와의 대야성전투에서 끝까지 항거하다 전사한 신라인이다. 당시 관위가 사지(舍知)인 것으로 보아, 지방출신 하급 관리 혹은 군인이 아니었나 한다. 그의 공을 기려 대나마에 추증됐다. 삼국사기 권 제5(신라본기 제5) 선덕왕 : 11년(642) 봄 정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가을 7월에 백제 왕 의자(義慈)가 군사를 크게 일으켜 나라 서쪽 40여 성을 쳐서 빼앗았다. 8월에 또 고구려와 함께 모의하..
서천(西川) 선덕왕 11년(642) 벌어진 백제와의 대야성 전투에서 대야성 도독 김품석 휘하 보좌관으로 백제군에 스스로 항복했다가 죽임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관위가 아찬이었다.  삼국사기 권 제47 (열전 제7) 죽죽 : 죽죽(竹竹)은 대야주 사람이다. 아버지 학열(郝熱)은 찬간(撰干)이 되었다. 죽죽은 선덕왕 때 사지(舍知)가 되어 대야성도독 김품석(金品釋) 휘하에서 보좌역을 맡고 있었다. 왕 11년 임인(백제 의자왕 2: 642) ..
모척(毛尺) 본래 신라 사람이나, 642년 대야성 전투 때 신라를 배반하고 검일과 더불어 백제와 내통해 성이 백제에 함락되도록 하고, 아울러 이때문에 대야성주 김품석 부부를 죽임에 이르게 했다. 660년 나당 연합군에 의한 백제 정벌 때 신라군에 잡혀 처형됐다. 그의 가족들은 절 노비로 적몰되었다. 삼국사기 권 제5(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본기 : 7년(660)…8월 2일에 주연을 크게 베풀고 장병들을 위로하였다. 왕과 정방(定方) 및 여러 장수들은 ..
고타소(古陀炤) 훗날 태종무열왕이 된 신라 김춘추 딸이다. 대야성 군주로 임명된 남편 김품석을 따라 임지에 있다가 백제군에 성이 함락될 때 피살됐다. 삼국사기 권 제41(열전 제1) 김유신上 : 선덕대왕 11년 임인(642)에 백제가 대량주(大梁州)를 격파했을 때, 춘추공(春秋公)의 딸 고타소랑(古陀炤娘)이 남편 품석(品釋)을 따라 죽었다.  춘추가 이를 한스럽게 여겨 고구려에 청병함으로써 백제의 원한을 갚으려 하자  왕이 허락했다. (춘..
고타소랑(古陀炤娘) 고타소(古陀炤)라는 여자를 높여 일컫는 말인 듯 ☞고타소(古陀炤)
서천(西川) 신라 선덕여왕 11년(642)에 벌어진 백제와의 대야성 전투 당시 도독 품석의 보좌관으로, 신라 쪽 정세가 불리해지자 백제 장군 윤충과 백제에 항복하자고 품석을 설득했다. 하지만 백제가 배신하는 바람에 항복하는 길에 백제군에 살해당한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관위는 아찬이었다.   삼국사기 권 제47(열전 제7) 죽죽 전 : 죽죽(竹竹)은 대야주 사람이다. 아버지 학열(郝熱)은 찬간(撰干)이 되었다. 죽죽은 선덕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