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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4

단원檀園이 그린 장구 가죽 단원 김홍도(1745~?)의 '무동舞童'은 삼현육각 한 팀이 걸지게 노니는 장면을 그렸다. 근데 장구치는 사나이를 보면 유달리 장구 한쪽 면이 크게 부풀려져 그려져 있다. 그림의 과장인가 싶었는데, 오늘 여기서 한쪽 면이 크게 부푼 장구를 만났다. 여윽시 단원은 단원이라. (2021.7.29.) 2022. 7. 31.
조희룡이 증언하는 김홍도와 그의 아들 조선후기 최대 화가로 꼽히는 단원 김홍도. 하지만 그 일생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다. 가장 신빙성 있는 기록이 아래에 소개하는 조희룡이라는 당시 사람의 증언이다. 조희룡(趙凞龍·1789~1866)은 김홍도의 아들 김양기라는 사람과 친분이 많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는 조희룡의 문집 중에 '김홍도전'(金弘道傳)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김홍도(金弘道)는 字가 사능(士能)이요 號는 단원(檀園)이다. 아름다운 풍채와 태도에 마음은 활달하고 구애됨이 없어 사람들이 신선세계에 사는 인물이라 했다. 그가 그린 산수(山水), 인물(人物), 화훼(花卉), 영모(翎毛)는 묘함에 이르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특히 신선(神仙)을 잘 그렸다. 준찰(?擦), 구염(句染), 구간(軀幹), 의문(衣紋)을 앞 사람들에게.. 2018. 2. 26.
이용휴가 김홍도 초상화를 보고서 김홍도 초상화에 부친 찬가〔對右菴金君像贊〕 남이 남의 초상화를 그리면 그 사람의 고움과 추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반면, 내가 나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면 내 주견에 제약을 받는다. 그런 까닭에 김군金君이 신군申君을 시켜 자기 얼굴을 그리도록 했다. 문인은 자기 글에 서문을 쓰지 않고, 명사는 자기 자신의 전기傳記를 쓰지 않는 옛날의 법에서 나온 생각이다. 세상에서 재능있는 예술가로서 김군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예술가로서의 재능 때문에 김군을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이제 김군의 초상화를 보니 영롱한 옥인 듯, 향기로운 난초인 듯하여 듣던 것보다 훨씬 나은 인물이다. 이야말로 그저 화가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참으로 온아溫雅한 군자로구나. 그랬더니 김경오金景五와 정성중鄭成仲이 이렇게 말했.. 2018. 2. 26.
김홍도의 집에 부친 이용휴의 글〔對右菴記〕 하늘이 사물을 탄생시킬 적에는 이치를 그 형상 속에 깃들게 하는 법이다. 그러고서 가장 신성한 성인에게 하늘을 대신하여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교화를 널리 펴게 하니, 그러한 말과 교화가 담겨 있는 곳이 바로 경서(經書)일지니라. 그러나 말이란 모름지기 문자의 힘을 빌어서야만 전달되므로 하늘은 또 창힐(蒼?)을 시켜 문자를 만들게 했다.  문자는 처음에는 형상을 본떠 만들었기에 그 활용에는 한계가 있는지라, 하늘은 또 이번에는 사황史皇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다. 이렇게 그림과 문자가 서로 어울리자 비로소 말과 교화를 완벽하게 표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숱한 세월을 거치고 드넓은 세상을 확장하는 동안, 문자는 늘 세상에서 제자리를 지킨 반면, 그림은 나타나기도 하고 깊이 숨기도 해서 ‘빈풍도’(?風圖.. 2018.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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