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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당 박창화2

[역사학자로서의 남당 박창화] 《중앙사단》 논문의 경우 졸저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 》를 내가 도서출판 김영사를 통해 공간하기는 2002년 5월이다. 직후 절친한 형 박환무가 연락이 왔다. 일본 근대 천황제를 주된 연구분야로 삼는 서강대 사학과 출신으로, 일본 유학파다. 그의 이야기인즉, 박창화가 논문을 공간한 것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진즉에 박창화를 역사학자로 보았으니, 그가 남긴 글들을 보면 그는 그 시대 전형의 역사학자였다. 나아가 《화랑세기》가 공개되면서 알려진 그의 유작들에는 분명히 강역과 관련된 논문도 있었고, 더불어 무엇보다 《요사遼史》지리지를 필사하기도 했다는 점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에서 그가 학술지에 공간한 논문까지 있다니, 역사학도로서의 박창화는 이제 기정사실화하는 단계에 접어든 셈이었다. 박환무에 의하면, 초기 .. 2020. 10. 21.
世紀(세기) 혹은 世記(세기) 혹은 세가(世家), 그리고 화랑세기(花郎世記) 실을 의미하는 糸(실 사)가 그 글자 의미를 한정하는 부수로 들어가 있는 데서 엿보듯이 '紀'라는 말은 본래 그물 주둥이를 오므려 조는 '벼리'를 의미한다. 이 벼리를 꽉 조으면, 전체를 갈무리한다. 이 글자는 아울러 記와 같은 발음, 같은 뜻으로 기록하는 일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기색은(史記》에서 '本紀(본기)'라는 말을 설명하기를 "紀者, 記也. 本其事而記之", 다시 말해, 이 경우 紀는 기록한다는 뜻이다. 그 사실에 바탕을 두고 그것을 기록하는 까닭에 본기라 부른다고 한 것이 그 증거다. 소위 말하는 기전체(紀傳體) 역사서에서 재위한 왕 순서를 따라 일어난 주요한 일들을 요약한 부분을 본기라고 한 까닭은 그것이 기전체 전체 역사서에서 벼리, 곧 가장 중요한 축이기 때문이다. 이런 紀를 응용한 말 .. 2018. 3.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