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민족주의15 민족주의 vs. 보편주의, 베를린 소녀상의 경우 '베를린 소녀상 구하기' 가능성 커져…보편주의 대응이 길열어 2020-10-14 07:14 "해법 논의하자"…비문 수정으로 존치 가능성 전망도 나와 "1년 기한 소녀상의 영구 설치 전화위복 될 수도" www.yna.co.kr/view/AKR20201013181152082?section=international/all 베를린 소녀상 철거 일단 보류돼…당국 "해법 논의하자"(종합) | 연합뉴스 베를린 소녀상 철거 일단 보류돼…당국 "해법 논의하자"(종합), 이광빈기자, 국제뉴스 (송고시간 2020-10-14 01:55) www.yna.co.kr 애초 이 문제가 제기하기 시작할 적에 내가 유심히 본 대목이 있다. 바로 이 소녀상이 민족주의에 기반하며, 그런 점에서 독일 측에서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그런 대목을 .. 2020. 10. 14. 내셔널리즘과 일본 메이지산업유산 나는 늘 주장하기를 민족은 무엇의 도덕판단 기준이 되는 절대선이 아니라고 했다. 민족 혹은 민족정신이 절대선인 대표가 나찌즘 파시즘이다. 이번에 세계유산에 등재된 일본 산업유산. 그 현장에서 혹사당한 이는 조선인 뿐만 아니라 중국인도 다수였고 연합국 포로도 있었지만 실은 절대다수가 일본 내지인이었다. 우리가 접근해야 하는 도덕기준은 인권 human rights 이다. 인권 역시 근자에 비판받는 측면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이보다 나은 판단기준을 찾기는 어렵다. 나는 늘 이 인권이라는 말을 맹자를 원용해 핵심이 불인지심不忍之心이라 풀어쓴다. 인간으로서 차마 하지 말아야 할 짓거리가 저들 노동현장에서 자행됐다. 이번 등재결정문 각주가 인용한 강제노동 피해국엔 코리언즈가 대서특필되고 그러면서 나머지 피해자들은 o.. 2020. 7. 7. 김유신을 희생해 탄생한 한국민족주의 한국 민족주의는 김유신 붕괴를 발판으로 삼는다. 내셔널리즘이 할퀴고 지난 자리에 김유신은 넝마가 되고 오물이 되었으니, 이후 그를 지나는 사람마다 입을 가리고 코를 막았으며 눈쌀을 찌푸렸다. 젊은 시절, 말 타고 가던 단재는 그를 도중에서 만나자 하마下馬하며 경의를 표했다. 얼마 뒤 단재는 갔던 길을 돌아오다 다시 김유신을 같은 자리에서 마주했는데 이번엔 꼿꼿이 말 안장에 걸터앉아서는 김유신을 내려다보며 얼굴에다 가래침을 세번 뱉고는 이렇게 단죄했다. "지용智勇 있는 명장名將이 안이요, 음험취한陰險鷲悍한 정치가이며 그 평생의 대공大功이 전장戰場에 잇지 안코 음모陰謀로 인국隣國을 난한 자者" 김유신은 종래 이 땅에는 생소하기만 한 내셔널리즘의 거대한 창시자인 까닭이 이에서 말미암는다. (June 25, 2.. 2020. 6. 28. 단재가 오도한 역사, 사대주의자 김춘추 구한말 애국주의적 언론인의 대표주자 중 한 명인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936)는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한 1908년 《독사신론讀史新論》 한 대목에서 이리 썼다. 그러나 "신라가 國小民弱(국소민약)하니 무엇으로 백제의 앙을 갚으랴. 오직 外援(외원)을 빌 뿐이다" 김춘추가 기둥 친 끝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고구려로 들어갔다…(중략)…그래서 김춘추가 바다를 건너 당에 들어가, 당태종을 보고 신라의 위급한 정형을 진숧고. 힘 닿는데까지 限하여 모든 卑辭厚禮(비사후례)를 가져 원병을 구할 새, 당조(唐朝) 군신의 뜻을 맞추기 위하여 子 법민·인문 등을 당에 留質(류질)하며, 본국의 의관을 버리고 당의 의관을 쓰며, 진흥왕 이래로 自記(자기)한 본국의 제왕년호를 버리고 당의 년호를 쓰며, 또 .. 2019. 4. 19. 탁본이 역사 인멸 주범이다 전남 화순군 이양면 증리 산 191-1 번지에 소재하는 쌍봉사라는 사찰 서쪽 뒤편으로 올라간 쌍봉산 기슭에 통일신라말, 이곳을 무대로 이름을 떨친 철감(澈鑒)이라는 선사(禪師) 산소가 있다. 이 무렵이면 승려는 거의 예외없이 다비를 할 때라, 원성왕 14년(798)에 출생한 철감이 경문왕 8년(868)에 입적하자, 그 역시 다비식을 하고는 그 유골과 사리를 수습하고는 그것을 봉안할 산소를 조성하고 그 인근에는 선사의 공덕을 칭송하는 신도비를 세우니, 그것이 현재는 저리 배치되어 있다. 승려 무덤은 여타 직업 종사자 혹은 다른 신분과는 독특하게 다른 점이 있어, 역시 승려임을 표시하고자 그 모양을 탑으로 만들었으니, 불교에서 탑은 바로 부처님 사리를 모신 산소인 까닭이라, 이 전통을 살린 것이다. 저 두 .. 2018. 10. 9. 문화재와 국가주의 망령 - 석굴암과 무령왕릉의 경우 문화재와 국가주의 망령 - 석굴암과 무령왕릉의 경우 *** 이 글은 사단법인 한국박물관협회가 발간하는 소식지인 《박물관소식》 2002 3․4호에 ‘특별기고’ 형태로 투고한 글 전문이다. 석굴암을 감도는 유령이 있다. 국가주의와 국민주의가 응결된 국민국가주의라는 망령이 그것이다. 한국인은 석굴암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한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TV는 장중한 애국가를 들려주며 그 배경으로 석굴암을 빼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석굴암이 훌륭한 문화유산의 하나임을 의심하는 이는 없다.다만 여기서 이런 의문을 품어봐야 한다. 석굴암을 ‘반만년유구한 한민족의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만든 주인공은 과연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그렇게 했는지를 이제는 되짚어보아야 한다. 이러한 반추 과정이 왜 필요.. 2018. 2. 12. 이전 1 2 3 다음 반응형